[뉴스룸에서-손병호] ‘박근혜 유토피아’

입력 2013-08-25 18:22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대로라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까.

당장 내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중 희망자는 오후 5시까지 학교가 ‘온종일 돌봄학교’를 통해 보살펴준다. 2015년에는 3·4학년, 2016년에는 5·6학년도 대상이다. 맞벌이 부부 자녀는 오후 10시까지도 학교가 책임져 준다. 아울러 맞벌이 부부한테는 아이가 만2세일 때까지 ‘영아 종일제 돌봄서비스’가 제공된다. 고교 무상교육은 내년에는 도서벽지 지역만 대상이지만, 2017년에는 전국 고교가 무상이다. 대학생은 2014년부터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

사병들의 봉급은 2배 인상되며 제대할 때 사회정착 지원금인 ‘희망준비금’도 준다. 25만 제대병에게 한 학기 대학등록금(400만원) 정도의 희망준비금을 지급하면 1조원이 소요되고, 100만원만 줘도 2500억원이다. 철도 부지에 아파트와 기숙사를 지어 보증금과 월세가 시세의 절반인 집이 5년간 20만호 공급된다. 이와 별도로 매년 45만 가구에 대한 주거 지원도 이뤄진다.

기초연금이 도입돼 65세 이상 어르신과 중증 장애인에게 현행 경로·장애인수당보다 2배 더 많은 돈이 지원된다. 공공부문 노인 일자리도 2014년부터 매년 5만개씩 신규로 늘어나며 수당도 지금보다 2배 인상된다. 차상위계층(최저생계비의 120%이하 소득층)의 범위도 선진국 수준으로 넓혀 복지대상이 늘어난다. 암·심장·뇌혈관·난치병 등 4대 중증질환은 현재 75%인 의료보험 보장률이 2016년에는 100%가 된다.

320만 채무불이행자의 채무는 심사를 통해 50∼70% 정도 경감된다. 경찰이 2만명 증원되며 전국 2만개 골목가게도 2017년까지 현대화가 이뤄진다.

농어업인의 국민연금 혜택이 확대되고 각종 보험료 부담도 완화된다. 마을회관과 경로당에 급식시설 및 도우미가 지원되며 농사 보조금인 직불금도 헥타르(㏊)당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된다. 이 밖에 전국 곳곳이 철도건설과 각종 산업벨트, 과학단지 조성 등 모두 106개 지역공약을 통해 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된다.

이외 거론되지 않은 공약들도 많다. 박 후보의 400쪽짜리 공약집을 꼼꼼히 읽다보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재원 때문이다. 공약 이행에 135조원이 소요된다지만 아무래도 공약을 만드는 입장에선 비용을 가급적 낮춰서 산정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산절감·세출조정(71조원), 세제개편(48조원), 복지행정개혁(10조6000억원), 기타수입(5조원)으로 재원을 조달키로 했지만 이 역시 최대 수입을 상정한 액수일 것이다. 더구나 세제개편은 이미 태클을 당했다.

요즘 복지를 줄일지 증세를 할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전체 공약 중 복지는 한 부분이다. 결국 전체 공약을 재조정할지 고민해야 한다. 다행히 박 대통령 공약 중 장기적 안목에서 방향이 맞고, 또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포기하기보다는 속도를 조절해서라도 가급적 살려나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공약을 살리려면 결국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또 대부분의 공약이 입법으로 근거가 마련되거나 국회에서 예산배분이 이뤄져야 시행할 수 있어 야당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하루 빨리 국민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고, 민주당 김한길 대표도 만나야 한다.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한 조치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 국민이나 민주당이 마다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침 공약집에 ‘국민통합’과 ‘국회 존중’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