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노숙인을 돕는 자원활동가

입력 2013-08-25 18:28


지난 주말, 후배를 만났다. 그는 요즘 매주 화요일 저녁에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노숙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한다고 했다. 1주일에 한 번, 2시간 동안 노숙인들과 함께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업 내용과 특이사항 등을 일지에 기록하며 글쓰기를 돕는 일을 6개월째 하고 있다는 것이다.

‘1년 동안 배우는 인문학이 노숙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노숙인들이 문학, 철학, 역사, 예술사 등 어려운 텍스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후배는 그분들이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가슴속에 씨앗 하나를 심는 작업으로 본다고 했다. 그 작은 씨앗이 언제, 어떻게든 열매 맺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그분들은 교수님들의 열정적인 강의와 ‘함께 공부하는 동기’끼리의 새로운 관계 형성,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자원활동가들과의 친근함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변화를 보인다고 했다.

후배는 그동안 적응하기까지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미 사회와 단절된 그분들의 날 선 경계심을 없애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조금씩 알게 되고, 예상치 못한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실제로 그분들과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 개인 사정을 상세히 알 수도 있고, 또 이들을 돕고 있는 실무진의 노고나 한계를 지켜보는 일도 많았어요.”

실무자도 아니고, 노숙인의 입장도 아닌 경계인으로서 자원활동가는 비공식 상담원 역할을 하는데, 무엇보다 노숙인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52주 동안 그 일을 잘 해내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 배려와 공감 언어가 필요할까. 후배의 성실함과 마음 씀씀이가 대견스러워 보였다.

자원활동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은 희생이나 무보수 노동으로 여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함께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들어가기 위한 사회활동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도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자원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단순히 남을 돕기만 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이 더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매력을 잊지 못해 다시 봉사활동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