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장 전격 사의 - 왜 중도하차?] “앞뒤 안맞는 4대강 감사 부적절”…朴心 작용한 듯

입력 2013-08-23 23:04 수정 2013-08-24 01:09

양건 감사원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한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 감사와 관련해 ‘앞뒤가 맞지 않는 발표’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사의 표명 과정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원장 사퇴는 향후 공직사회에 대한 기강 다잡기, 공공기관 대폭 물갈이 인사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23일 김 실장이 직접 양 원장에게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주 초 열린 김 실장 주재의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양 원장이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방침이 결정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4대강 사업이 대운하 건설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는 감사원 발표 뒤 양 원장은 정권 입맛에 따라 ‘정치 감사’를 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지난 정권 때와 정반대로 발표되자 새누리당 친이계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양 원장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4대강 사업과 감사 결과 자체에 대해서만 입장을 밝혔을 뿐 정치 감사 논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해 정권이 바뀌자마자 전혀 다른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현 정권 내부에서는 부담스러워했던 기류가 강했다. 또 최근 심각한 녹조 현상 등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러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전 정권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던 감사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감사원 내부에서도 4대강 논란을 계기로 양 원장이 조직 장악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물러나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조직 안팎의 압박을 받아 오던 양 원장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는 양 원장이 박 대통령에 더 이상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사의를 결정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친이계 측에서는 양 원장을 그냥 놔둘 수 없다는 격앙된 반응도 나와 여당 내 분란 조짐까지 보였다. 일부 친이 인사들은 직접 양 원장에게 물러나라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치적 파장이 커지자 박 대통령 의중과 무관하게 양 원장 스스로 퇴진했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양 원장의 사의 표명에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극소수 인사들만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내에서는 이런 ‘비정상적 상황’에서 양 원장이 임기를 마저 채우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시각이 있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으로 분석하는 기류도 강하다.

양 원장이 자발적 퇴진 형식으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사실상 경질 성격이어서 향후 논란도 예상된다. 감사원장은 헌법에 4년 임기가 보장돼 있다. 2011년 3월 임명된 양 원장의 임기는 1년7개월 정도 남은 상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