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합의-이산가족 반응] “꿈에 그리던 딸 만날 생각에 마음 부풀어”
입력 2013-08-23 22:57
가족을 북한에 남겨둔 채 수십 년 세월을 보낸 이들은 이산가족 상봉 여부를 놓고 한껏 기대감을 내비쳤다. 실낱같은 상봉 기회를 고대하다 심신이 지쳐 있던 이산가족들은 “남겨진 가족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이 진행된 23일 대한적십자사에는 이른 새벽부터 상봉을 신청하기 위한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산가족 1세대인 권혁래(94) 할아버지는 “최근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보도를 보고 당시 세 살이던 동생을 찾기 위해 용기를 냈다”며 남북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작성했다. 고하자(81) 할머니는 “북에 두고 온 친언니를 만났으며 좋겠다”며 “20년 전 상봉 신청한 것이 누락됐을까봐 적십자사로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걷기가 힘들어 나무지팡이를 들고 적십자사 경기도 지사를 찾은 손상희(88) 할머니는 “자나 깨나 그리던 딸을 만날 생각에 손에 잡히는 게 없다”며 기대에 잔뜩 부푼 표정이었다. 손 할머니는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당시 아홉 살 딸과 생이별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은 북에 남겨둔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길 바랐다. 51년 열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는 김태웅(74)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인민군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생이별을 겪은 지 60년이 지났다”며 “아버지 생사만이라도 확인된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혹시 이복동생이라도 있다면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 초량동에 사는 김효원(86) 할머니는 “고향이 평양인데 대동강을 건넌 지 66년이 지났다. 살아만 있으면 언제든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사조차 모르고 세월만 흘렀다”며 “살아 있으면 올해 91세가 됐을 남편을 더 늦기 전에 만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허정구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장은 “이산가족 신청자들의 전화 문의도 끊이지 않았다”며 “그들은 하나같이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더 많이 더 자주 이뤄져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도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주영 한국 YWCA 홍보출판부장은 “전쟁이 나고 두 세대가 지난 만큼 이산가족의 만남은 더욱 시급하고 절실해졌다”며 “앞으로 평화협정을 통해 시민사회가 더욱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상봉 희망자 12만9000여명 가운데 5만6000여명이 세상을 떠났다. 남은 생존자는 7만3000여명이다. 대부분은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