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로 첫 주역 발레리노 김윤식 “중1 때 처음 본 발레 그 작품 주역 맡다니 신기할뿐”
입력 2013-08-25 17:11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김윤식(24). 아직은 낯선 이름이다. 2010년 입단해 주인공인 ‘왕자’를 따라다니는 역할만 해오던 그가 주역으로 데뷔한다.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발레 ‘돈키호테’를 통해서다. 수석무용수 이동훈 정영재와 같은 배역(바질리오)을 맡은 후 ‘발바닥에 땀나게’ 연습 중인 그를 지난 21일 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돈키호테’는 그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중학교 1학년 때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올라 와 처음으로 본 발레가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 그는 “발레리노가 여자를 번쩍 들고, 무대에서 계속 뛰고, 돌고 하는 게 대단해보였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했는데 현실이 되다니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는 바질리오 역에 만족스러워했다. “보통 주인공은 왕자인데 바질은 이발사다. 무게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캐릭터다. 춤 잘 추고 기타 잘 치고 풍류에 능한 자이다. 나도 노는 거 좋아하는데 배역이 딱인 것 같다”며 웃었다. 제목과는 달리 발레의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다. 돈키호테가 지나가는 마을의 절세미인 키테리아와 그를 사랑하는 바질리오라는 청년이 주인공이다.
김윤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형제 발레리노,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 9’, 그리고 사진이다. 선화예중고를 졸업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이던 2010년 국립발레단 인턴단원으로 들어왔다. 친형 김경식(28)은 그보다 늦게 국립발레단에 들어왔다.
발레를 하게 된 것은 형 때문이다. “힙합을 좋아하던 형을 엄마가 제대로 무용을 배워보라며 발레학원에 데려갔어요. 형을 보니 남자가 춤추는 게 너무 멋진 거예요. 그래서 ‘나도 할래’하고 졸랐죠.”
전공을 하게 된 이유는 현실적이다. “발레리노가 별로 없으니 나중에 무대에 그냥 서 있는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원 교사의 말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하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는 “어릴 적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한국에 있는 남자 중에서 내가 발레를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 선화예중에 가보니 다른 세상이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제대로 자극을 받았다. 무엇보다 발레가 좋았다. “뮤지컬은 말과 노래가 있지만 발레는 무언극이잖아요. 말이 없으니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죠. 몸짓 하나하나가 말이 되는데 그게 매력이죠. 처음엔 지루하고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볼수록 빠져들게 되는 게 발레이지요.”
최근작 ‘차이콥스키’에선 무려 7개의 ‘이름 없는’ 역할을 맡았다. “공연 내내 옷 갈아입느라 정신없었죠. 그러다가 주역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준비 철저히 해야겠다, 주역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케이블채널 Mnet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 9’에 형과 함께 나갔다. 3라운드를 통과했지만 기권했다. 그는 “나는 발레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프로그램은 발레보다는 ‘스트리트댄스’를 원했다.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만뒀다”고 말했다.
김윤식은 발레단에서 거의 프로 사진작가로 통한다. 동료들의 연습장면을 재미삼아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요즘은 발레단 공연 장면까지 찍는다. “1년째 사진학원에서 이론과 실기를 배우고 있어요.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찍는 거 좋아해요. 무용하는 단원들 찍는 것도 즐겁고요. 발레하면서 남는 건 사진인 것 같아요. 하하.”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