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제도 알아야 힘!] 喪중에 경황 없는데 “빚 갚아라”… 많이 당황하셨죠?

입력 2013-08-24 04:00


A씨는 최근 아버지를 잃었다. 교통사고였다. 음주운전 차량이 횡당보도를 건너던 A씨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친 것이다. 운전자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망가는 바람에 A씨 아버지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A씨 가족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슬픔은 현실 앞에서 사치였다.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다. 집에는 빨간 차압딱지가 붙었다. 평소 아버지가 사업을 하면서 가계를 책임져 왔기 때문에 남겨진 가족은 빚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A씨 가족은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가 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가족이 사망한 뒤 알지 못했던 빚 때문에 채무의 늪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 성인이 됐을 때 친부의 사망 소식과 함께 채무가 상속됐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례도 있다.

금융 당국에서는 상속과 관련해 유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다. 상속인이 금융감독원이나 시중은행 등에 조회 서비스를 신청하면 한 번에 피상속인의 예금과 대출, 보증, 보험계약, 신용카드 및 가계당좌거래 유무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다음달 1일부터는 대부업체의 채무 정보까지 받아볼 수 있다.

만약 A씨가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를 알고 있었다면 길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회 결과를 보고 재산보다 채무가 많으면 상속개시 후 3개월 이내에 상속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회 서비스를 통해 보험가입 유무도 알 수 있어 사망자가 가족에게 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말하지 않아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사례를 막을 수 있다.

보험사가 안전행정부에서 제공받은 사망자 정보를 활용해 지난해 6월부터 지난 4월 말까지 상속인에게 지급한 보험금은 총 360억원(4606건)이나 된다.

보험사가 주기적으로 상속인에게 ‘보험금 찾아주기’를 하고는 있지만 상속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어 상속인이 직접 조회 서비스를 통해 보험가입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사망자의 채무에 대해서는 3개월간 연체이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금감원이 사망자 채무 연체이자 부과 관행을 개선하라고 지도한 데 따른 것이다. 상속 여부를 결정하도록 민법에 규정된 3개월 동안에도 연체이자를 내도록 하는 건 과도하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2010년 은행·저축은행·신용카드사가 채무자 사망일 이후 부과한 연체이자는 약 5억9000만원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유족들은 사망일로부터 3개월 내에는 은행 대출금을 미리 갚을 때 부과되는 중도상환수수료도 낼 필요가 없다. 상속 재산을 정리하는 기간을 고려해 3개월 내 피상속인 대출금을 상속인 명의로 변경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부과된 중도상환수수료는 약 6억원으로 대출 한 건 당 약 30만원씩 부과됐다.

모든 금융거래를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채무면제·유예상품(DCDS)’ 가입 유무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금감원 홈페이지에서 조회하거나 해당 카드사에 직접 알아보면 된다.

DCDS는 신용카드사가 매월 회원으로부터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고 회원에게 사망, 질병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카드 채무를 면제하거나 결제를 유예해주는 상품이다.

금감원이 2005년 1월부터 올 1월까지 DCDS 가입자 중 보상금을 청구하지 못한 사람을 파악한 결과 10만5000명(DCDS 가입자의 1.9%)이 900억∼1500억원의 보상금을 찾아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사망으로 찾아가지 못한 경우는 6838명으로 220억원에 달했다.

보상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5년 이내에 팩스·우편·방문·홈페이지를 통해 보상 신청을 하고 입증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면 된다. 신청 후 통상 7일 이내에 카드 채무 면제 또는 유예를 받을 수 있다. 사망일 이후 카드대금이 결제됐어도 다시 해당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