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무상보육 예산 해법은

입력 2013-08-23 17:50


올해 무상보육 대상이 만 0∼5세 영유아로 확대되면서 급증한 관련 예산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중앙정부의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무상보육 국고보조율을 50%에서 70%(서울은 20%에서 40%)로 높이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개정안 처리에 소극적이다. 정치권이 ‘한턱내겠다’며 내질렀지만 재원을 마련할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통과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정부(기획재정부)의 반대로 9개월째 법사위에서 잠자고 있다. 정부는 무상보육사업의 안정적 시행을 위해 이미 확정된 국비 지원금 5600억원의 지급도 무상보육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예산 조기 소진으로 무상보육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대다수 지자체들은 추경 편성에 동의해 지원금을 받았지만 서울시는 버티고 있다. 당장 9월부터 무상보육 예산이 고갈되지만 부동산 거래 감소 등으로 올해 세수 결손액이 7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추경을 편성할 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비 지원금 1355억원을 받아 당장 급한 불을 끈다 해도 올해 2400억원이 부족하다며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태세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국무총리가 ‘보육제도 운영에 따라 지자체의 재정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약속을 거듭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자치구들과 함께 버스·지하철 광고와 현수막 등을 통한 여론전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무상보육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일정 비율로 분담하는 국고보조 사업이다. 지원 대상이 늘어나 국비 지원이 증가하면 그에 비례해 지방비 부담도 늘어나는 구조다.

국회와 정부가 만 0∼5세 전면 무상보육 예산안을 지난 연말 통과시키면서 올해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관련 비용은 당초 예산안에 비해 1조5000억원가량 늘어났다. 지자체들은 정부 약속을 믿고 보육비 추가 부담을 배제한 채 올해 예산안을 편성했기 때문에 예산 부족 사태는 이미 예고됐었다.

지자체들은 정치권과 중앙정부의 책임을 강조한다. 무상보육 확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고, 국회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는데 애꿎게 지자체에 재정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전국 시·도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 지방 부담을 더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힌 사실을 강조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세수가 감소해 지자체 재정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기도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3875억원 감액 추경을 했다. 서울시도 4000억원대의 감액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 와중에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가장 큰 세원인 취득세 영구인하까지 추진하자 지자체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무상보육 예산 갈등은 중앙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뜩이나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에 부담을 떠넘기는 건 ‘강자’의 횡포다. 우선 지방 재정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당초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에 협조해야 한다. 국비와 지방비가 함께 투입되는 국고보조사업을 시행할 때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사전에 긴밀히 협의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지방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예산 부담을 떠넘기는 악순환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