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웰빙과 웰 다잉

입력 2013-08-23 18:21


요즘 일찍이 유서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큰 재산 있는 이들은 사후 재산 문제로 자식들이 다툴까봐 미리 정리를 해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재산 정리가 아니더라도 유서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필자도 10여년 전부터 매년 연말이면 유서를 쓴다. 매년 쓰지만 쓸 때마다 두 가지 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돌아봄이다. 늘 느끼는 것은 부끄럽다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때로는 가족 앞에서의 부끄러운 모습을 본다. 다른 한 면은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다시 바로 믿고, 바로 살아야지 하는 다짐이다.

#유서를 써 본 적이 있나

얼마 전 캐나다 로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로키 관광을 마친 후 밴쿠버로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3밸리 갭 샤토(3Valley Gap Chateau)에 잠시 머물렀다. 그곳은 1960년대 골든 벨이라는 분이 만든 작은 휴양지다. 많은 옛날 물건들을 부문별로 모아 전시해 놓고 있어 100년 전 또는 그 이전에 쓰던 물건들과 시설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동차 박물관이며, 기차 박물관 그리고 이발소, 교도소 등. 그중에 작은 예배당도 지어져 있다. 그 예배당 옆에는 작은 무덤들의 모형이 있고 동시에 시신을 넣는 빈 관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같이 갔던 일행들이 그 관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간 상태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분들에게 그곳에 누웠을 때 기분이 어떠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어보았다. 여러 대답이 있었지만 공통적인 생각은 먼저 죽음, ‘내가 언젠가는 죽어 이 관 속에 들어가는구나’하는 것과 짧지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웰빙’에서 ‘웰 다잉’으로

200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웰빙(Well being)

이다. 우리말로 참살이라고 한다. 웰빙이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내린다. 쉽게 말해서 건강하고 행복하며 복지와 안녕을 누리며 잘살자는 것이다.

단순한 물질적 부에 만족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추구하고 잘살자는 삶의 문화다. 그래서 건강식을 섭취하고 꾸준히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웰빙을 위해 다양한 것들을 추구하려고 애쓴다.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누구든지 행복해지고 싶고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고자 하는 욕구는 다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 단순히 웰빙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웰빙에서 이제는 웰 다잉(Well dying)의 중요성을 더 강조해야 한다. 수년 전부터 잘 먹고 잘살자는 웰빙에서 잘 죽어야 한다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웰다잉은 물론 일차적으로 잘 죽는 것, 즉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이 문제가 법제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웰다잉은 단순히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치료로 환자와 그 가족에게 더 이상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하지 말고 깨끗하게 죽음을 맞게 해야 된다는 것만은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웰빙으로 잘살다가 웰다잉으로 잘 떠나자는 것이다. 단순히 죽음 직전에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건강할 때, 죽음을 생각하고 유서도 작성하고 더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의 내세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느 분이 ‘웰다잉 십계명’이라고 이름을 붙여 잘 죽기 위한 10가지를 제안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건강할 때 봉사하기, 유언장 작성하기, 죽음을 불행인 것처럼 대하지 말기, 사전 의료 의향서 작성하기, 버킷 리스트 작성(하고 싶은 일을 기록하여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같이 보낸다), 장례계획 미리 세우기 등이었다.

의미 있는 것이며 웰다잉을 위해 필요한 것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요 14: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서 웰다잉은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죽음 이후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아직도 웰빙에 매달려 있다면 이제는 웰다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이 필요하다.

김경원 (서현교회 목사,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