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의 꿈에 도전한다] 희망… 용기… 좌우 날개 달고 훨훨 날아보자
입력 2013-08-24 03:59
10월 개최 인간동력항공기 경진대회 연습현장
인간동력 항공기 경진대회가 오는 10월 전남 고흥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센터에서 열린다. 지난해 10월 국내 처음 시범대회가 개최된 이후 올해부터 일반인에게도 문호가 개방됐다. 인력비행은 기계적 동력 없이 오직 사람의 다리 힘만으로 지상을 활주, 이륙해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을 말한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 음속의 다섯 배가 넘는 초고속 항공기를 만드는 시대에 인력 비행이 황당하고 헛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 날고자 했던 꿈은 비행기 탄생 훨씬 이전부터 인류의 한 가지 큰 희망이었고, 그 꿈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희귀병 아들에게 용기와 희망 주고파…어릴 적 로망 이루려
난 17일 충북 청원에 위치한 공군사관학교 성무비행장. 한낮 뜨겁게 달궈진 활주로에 한 무리의 남녀가 나타났다. 인간동력 항공기 대회 출전을 위해 실제 비행 훈련을 받으러 온 조종사 후보들이다. 지난 4월부터 4차례 체력 테스트를 통해 참가자 700명 중 13명이 최종 후보로 선발됐고, 이 가운데 8명이 이날 첫 비행 훈련에 나섰다.
10대부터 40대까지 도전자들의 연령은 다양했다. 최고령자인 정영미(48·여·대전 둔산동)씨는 희귀병을 앓는 큰아들(22)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아들은 고3 때 난치성 장질환인 ‘크론병’이 발병해 완치 불가 판정을 받았다. 정씨는 “엄마로서 책 속 주인공처럼 기적을 이뤄낼 순 없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들이 병마에 무릎 꿇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품고 배짱 있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작정”이라며 웃었다.
충남 천안에서 작은 부품회사를 운영하는 이민주(31)씨는 비행기에 대한 어릴 적 로망을 한번쯤은 꼭 경험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구름을 그리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전투기를 보며 ‘와! 타고 싶다. 날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죠. 큰 우산을 뒤집어지지 않게 여러 개 줄을 묶어 지붕 위에서 뛰어내렸던 기억, 누구나 한번쯤 있잖아요.” 이씨는 “일상에서 나태해지는 나를 채찍질하고 아이들에게 아빠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강민성(17)군은 “저체중으로 약골 취급받는 게 싫었다. 내 힘으로 중력을 이기고 공중에 뜬다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인한 체력과 조종 능력이 비행 성공 열쇠
사이클링 유니폼을 갖춰 입은 조종사들은 주날개 24m, 동체 8.4m, 무게 40㎏의 초경량 비행기를 머리 위로 들고 활주로의 출발선으로 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글대는 태양을 향해 비상(飛翔)을 꿈꾸면서.
항우연 장상현 연구원이 비행 왕초보인 조종사들을 위해 먼저 시범을 보이기로 했다. 장 연구원은 지난해 시범대회에서 240m를 날아 인력비행 국내 최장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베테랑인 그 역시 조종석에 앉자 긴장된 빛이 역력했다.
“자, 바람 양호. 다같이 파이팅하고 갑시다. 하나, 둘, 셋, 스타트!”
훈련 책임자인 항우연 공력성능팀 권기정 박사가 활주로 먼발치서 크게 소리쳤다. 출발 신호와 함께 장 연구원의 근육질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달과 체인으로 연결된 프로펠러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항공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양쪽 날개를 잡아주는 윙맨(wingman)과 조종석 뒤에서 기체를 미는 푸시맨(pushman)도 함께 달렸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자 장 연구원이 좌석 왼쪽에 달린 조종 키(엘리베이터)를 손으로 툭 쳤다. 그러자 뒤쪽 수평꼬리 날개가 아래로 기울어졌고 동시에 기체 앞부분이 들리면서 항공기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5m 상공을 약 10초간 날았다. 밑에서 지켜보던 조종사 후보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떴다.”
하지만 환호도 잠시. 기우뚱하더니 항공기가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활주로에 먼저 부딪힌 뒷바퀴와 수직꼬리날개 아랫부분이 충격으로 떨어져 나갔다. 황급히 달려간 조종사 후보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조종사는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한참 뒤 이곳저곳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아.” “겁난다.”
모든 상황을 지켜본 권 박사는 “비행기 날개처럼 양력(물체를 수직으로 들어올리는 힘)으로 서서히 떠야 되는데, 너무 급히 상승한 나머지 실속(양력을 잃어버림)한 게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권 박사에 따르면 인력비행의 성공은 강인한 체력과 조종 능력이 반반씩 좌우한다. 권 박사는 “사람의 지속적인 힘은 0.5마력(350∼400와트)의 파워를 만들어낸다. 사이클링 회전수(rpm)가 분당 120∼130, 초속 8.5∼9m 정도 속력으로 달리면 뜰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제약 조건이 있다. 옆바람이 초속 2.5m, 맞바람은 초속 5m 이하로 불어야 비행이 가능하다. 이륙 후에도 수직꼬리와 수평꼬리날개 조종을 통해 균형을 잘 유지해야 안정적 비행과 자연스러운 착륙이 가능하다.
잠시 마음의 안정을 취한 뒤 이번엔 조종사 후보들이 각자 비행훈련에 나섰다. 앞서 시범비행 상황을 지켜본 터라 두려움과 긴장이 앞설 수밖에 없다. 예상대로 비행은 쉽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지만 항공기는 좀처럼 뜨지 않았다. 이슬기(25·여·KAIST 박사과정)씨는 “평소 자전거 타기를 즐겨해 하체 근력은 자신 있었는데, 실제 달려보니 페달링 파워가 덜 나오고 조종도 힘들다”며 연신 땀을 닦아냈다. 박성우(25·서울대 4학년)씨도 “컴퓨터 시뮬레이션할 땐 600∼700m를 날았는데 실제랑은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바람 등 외부 변수가 너무 많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김영규(28·회사원)씨는 “지난해 시범대회를 지켜봤는데, 이륙 순간이 중요하더라. 막상 뜨고 나면 균형을 유지하면서 날아가는 건 문제없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13명 모두가 인간동력 항공기대회에 조종사로 출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권 박사는 “몇 차례 더 훈련을 거친 뒤 다음달 6일 고흥 항공센터에서 사전 비행대회를 열어 좋은 기록을 낸 3∼4명만 대회에서 항우연이 제작한 항공기를 탈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청원=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