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숨기기… ‘보통사람’ 노태우 ‘프로’ 전두환
입력 2013-08-22 18:17 수정 2013-08-22 22:46
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생 재우씨, 사돈이었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측이 이르면 23일 회동해 미납 추징금 231억원 공동 납부 합의안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22일 “전두환 전 대통령 쪽이 문제지 노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노·전 두 전직 대통령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나란히 반란·내란과 뇌물수수죄에 대해 유죄가 확정됐다. 그해 12월 두 사람은 특별사면됐지만, 추징금은 그대로 남았다. 이후 16년 동안의 추징금 집행 실적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징금(2628억9600만원) 100% 납부를 앞두고 있는 반면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아직까지 전체(2205억원)의 24%만 환수됐다.
법조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 수법이 ‘보통사람’ 선을 넘지 못한 데 비해 전 전 대통령은 ‘돈세탁 프로’ 못지않게 교묘히 재산을 은닉한 결과로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비교적 추적이 쉬운 금융기관에 뭉칫돈을 예치하거나 기업인들에게 대여해 주는 방법을 썼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은 주로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 무기명 채권 형태로 비자금을 관리했다.
검찰은 95년 12월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할 당시 이미 9개 금융기관의 37개 계좌에 4189억원이 입금됐던 것을 확인했다. 또 추징에 대비해 노 전 대통령 소유 금융자산 2300여억원과 서울 연희동 자택, 대구 소재 전답 등을 모두 묶어 놓을 수 있었다. 당시 금융 전문가들은 “천문학적인 비자금 규모에 비해 관리 수준은 아마추어급”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검찰은 97∼98년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체 66%인 1742억원을 환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이 재우씨(120억원)와 신 전 회장(230억원)에게 맡겼던 비자금에 대해 추심금 청구소송을 내 승소하고, 시중은행에 차명으로 묻어뒀던 예금을 찾아내는 등 차곡차곡 추징금 집행을 해왔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의 경우 대법 선고 직후 환수한 313억원을 제외하고는 집행이 지지부진했다. 2004년 차남 재용씨가 구속되자 어머니 이순자씨가 “알토란같은 내 돈”이라며 200억원을 대납한 것이 그나마 성과였다. 전 전 대통령은 줄곧 “낼 돈이 없다”고 버텼다.
노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이 쉽게 노출된 데는 퇴임 후 비자금 분배 과정에서 측근들을 소외시키다 보니 결과적으로 여러 심복들이 등을 돌리거나,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추징금 집행을 놓고 친족들 간 소송전을 벌이는 등 분열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