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의료장비 도입 붐 환자들 부담만 키운다

입력 2013-08-22 18:02

의사는 적고 기계는 많고. 국내 의료 현실은 선진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의사 수와 평균보다 2∼5배 많은 고가 의료장비의 대비로 설명된다. 의료진 수급은 이익단체의 반대에 막혀 조정이 어려운 반면 의료기관의 장비 도입 경쟁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오영호 연구위원은 22일 ‘고가 의료장비 공급 과잉의 문제점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헬스 데이터 2013’을 토대로 OECD 회원국 평균을 몇 배씩 상회하는 국내 고가 의료장비 보유량을 분석했다.

결석 치료에 쓰이는 체외충격파쇄석기(ESWL)의 국내 보유량은 인구 100만명당 13.5대로 OECD 평균인 100만명당 2.9대보다 5배쯤 많아 회원국 중 최고를 기록했다. 유방촬영장치의 경우 54.8대로 OECD 국가 가운데 그리스 다음 2위였다. 평균(21.3대)을 세 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PET(양전자단층촬영)는 3.8대로 평균(1.7대)의 두 배 이상, MRI(자기공명영상)는 23.5대로 평균(14.0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증가 속도 역시 기록적이다. CT는 1995년 15.5대에서 지난해 37.1대로 연평균 5.3%씩 늘었다. MRI는 같은 기간 3.9대에서 23.5대로 6배, ESWL은 3.6대에서 13.5대로 4배 가까이 불어났다. PET는 2005년 이래 연평균 증가율이 무려 27%나 됐다. 반면 의료 서비스 질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0명(한의사 포함)으로 칠레, 터키 다음으로 낮았다. OECD 평균은 3.1명이다.

고가 의료장비를 도입한 의료기관은 투자비 회수를 위해 과잉·중복 검사를 하고 결과적으로 환자의 비용 부담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06년 이후 CT, MRI, PET의 총 촬영 건수는 연평균 13.3∼60.3% 증가했다. 오 연구위원은 “각 병원이 스스로 고가장비 도입을 자제하도록 의료행위마다 보상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 제도’를 총액제 등으로 변화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