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자 양보하고 공정성 정착돼야 갈등 없어져

입력 2013-08-22 17:57

타협과 공존문화 없이는 복지도, 경제성장도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갈등 공화국’임을 새삼스럽게 확인케 하는 사안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 녹조의 4대강 사업 책임론, 밀양 송전탑, 근로소득세 증세논란, 현대자동차 파업,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막말대립, 무상급식 찬반…. 갈등은 곳곳에 널려 있고, 한국사회는 지금도 매 순간 갈등을 토해내고 있다.

마침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최대 24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민주주의 수준과 정부의 갈등 관리능력, 지니계수 등을 기초로 각국의 갈등지수를 측정·분석해 21일 발표한 내용이다. 그는 우리의 갈등지수를 OECD 평균으로 낮추기만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7∼21% 높이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정부의 복지공약 이행에 필요한 돈 135조원을 단번에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한국의 갈등지수는 주요 선진국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특히 OECD 국가 중 네 번째였던 2009년보다도 더 악화됐다. 대체로 우리가 체감하는 것과 일치하는 결과다. 계층·지역·노사·이념·세대갈등 등 갈등의 종류만 살펴봐도 어느 하나 눈에 띄게 완화된 것은 없고, 대개 심화되는 추세다.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성인 10명 중 8∼9명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사회연구소의 2007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외환위기를 겪었던 10년 전에 비해 현재의 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응답이 55.6%로, 완화됐다는 응답 18.8%보다 3배 가량 많았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갈등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은 크게 우려스럽다.

선진사회와 후진사회를 나누는 기준은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사회적 역량 여부다. 그렇지만 갈등 조정과 해소가 본업인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거나 직접 갈등의 근원지가 되기 일쑤다. 소통노력이 부족한 정부, 약자와 지역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기업, 비정규직 차별을 외면하는 정규직 노조 등도 모두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사회 갈등의 상당부분은 불공정 사례에서 비롯된다. 즉 최근 문제가 된 ‘갑을관계’와 차별에서 가장 심각한 계층갈등이 싹트고 깊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부자와 강한 자가 먼저 양보해야 갈등 해소의 길이 열린다. 고려대 박길성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소통의 순서로서 강자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국가와 정당정치는 모두 타협과 절충의 산물”이라며 “연대적 공존의 문화를 정착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대적 공존을 위해서는 공정성이 중요하다. 공정한 사회는 페어플레이의 핵심가치, 즉 법치, 기회의 균등, 관용, 책임 및 승복이 기본질서로 안착된 곳을 말한다.

소통과 공존을 위한 고민 없이 경제발전과 경쟁만 추구해 온 한국이 사회갈등을 시급히 해소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복지국가 수립도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