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보료 낼 돈은 없어도 여행 갈 돈은 많다니
입력 2013-08-22 17:36
국민은 누구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이 명제는 피보험자가 건강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했을 때 성립한다. 대다수 국민이 건보료를 제때 납부한 결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3조3000여억원의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올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58.7% 늘어난 9700여억원의 흑자를 나타냈다.
그러나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린 이래 누적된 건보재정 적자로 건보공단이 적립해야 할 법정준비금은 법적 기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건보 재정 적자 규모는 2030년 28조원, 2040년 65조6000억원, 2060년 13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발표도 있었다. 고의로 건보료를 체납하는 얌체족들이 건보 재정 적자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1일 공개한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 해외 출입국 현황(7월 기준)을 보면 6개월 이상 건보료를 체납한 가입자는 152만5000가구, 체납 건보료는 무려 1조9791억원에 이른다.
기가 막힌 것은 건보료 한 푼 내지 않으면서 해외 여행에는 돈을 펑펑 쓴 도덕불감증 환자들이 지천이라는 사실이다. 장기체납자 가운데 3가구가 해외여행을 100번 넘게 했고 141가구는 50번 이상, 231가구는 30번 이상 다녀왔다. 한 100억대 자산가는 32개월간 건보료 2071만원을 체납하는 동안 총 10차례나 외국을 들락거렸다. 건보료 311만원을 체납한 연예인 박모씨는 체납기간 4차례 해외여행을 했다. 올 들어 7월까지 한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다녀온 장기체납자가 6만2400여 가구에 달한다. 건보료 내는 국민들만 ‘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건보료 고액체납자는 의사 변호사 변리사 감정평가사 회계사 세무사 법무사 연예인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그럼에도 이들 중 상당수가 특별관리대상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는 등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예금 및 재산 압류 등의 방법을 통해 체납 건보료를 추징하고 있으나 고액체납자가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이 체납에 따를 불편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보다 강도 높은 대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