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대화록 수사의 세 가지 가능성
입력 2013-08-22 17:36 수정 2013-08-22 22:21
지금 성남 국가기록원에서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한창이다. 방대한 양의 자료 복사와 열람이 진행 중이다.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기록물이다. 노무현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과 대통령기록관 서고, 대통령기록물 관리시스템인 팜스(PAMS) 등이다. 한 달 정도 걸릴 거라는 검찰의 설명이다. 압수수색의 목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찾는 것이다.
2007년 10월, 김만복 국정원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 대화록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 한 부를 보관시켰고, 나머지 한 부는 이지원에 등록할 것을 지시했다. 이창우 청와대 제1부속실 수석행정관은 그해 12월 대화록을 이지원에 등록했다. 노무현 청와대 참모들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우리는 분명히 대화록을 이지원에 올렸다. 이지원에 등록된 대화록을 본 사람도 있다. 이지원은 통째로 국가기록원에 이관됐다. 왜 없는지, 정말 없는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록은 행방이 묘연하다. 국회의원들이 며칠 동안 국가기록원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검찰이 대화록 실종사건 수사에 나섰다.
대략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수사 결과는 세 가지다. 우선 대화록이 이지원에 있을 경우다. 그러면 ‘찾았다’고 발표한 뒤 수사 종료다. ‘사초(史草) 실종’을 두고 벌어졌던 정치권의 격렬한 논쟁은 해프닝으로 끝난다. ‘대화록의 은닉, 폐기, 삭제, 절취 등의 행위에 가담한 성명불상의 피고발인들을 처벌해 달라’는 고발 취지도 머쓱해진다.
다음으로 노무현정부 시절 대화록이 삭제된 사실이 드러나는 결과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에 있는 대화록을 삭제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다. 이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에 보관토록 하고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은 행위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중요한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있는 반면, ‘여러 정황을 고려해 국정원이 보관토록 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반론도 있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은 사망했으므로 ‘공소권 없음’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현직 부장검사는 “처벌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복잡한 법 해석상의 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화록이 삭제됐을 경우다. 이지원 자료를 PAMS 자료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수도 있고, 누군가 일부러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수로 삭제됐다면 국가기록원 시스템을 고치면 되겠지만, 일부러 삭제됐다면 삭제한 주체를 찾아내 처벌하면 된다.
세 가지 중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소모적인 논쟁은 그쳤으면 한다. 적어도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하는 ‘관례’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유야 어찌됐던 지난 6년간 노 전 대통령의 기록물은 두 번째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원에 대통령지정기록물 37만여건을 포함 825만건을 남겼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정기록물 24만여건을 포함 1088만여건을 남겼다. 좋은 의도로 법을 만들고, 대통령기록물을 남겼던 만큼 그 취지를 보호하는 것도 국가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대화록이 압수수색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