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배려

입력 2013-08-22 17:36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아침저녁 목덜미에 감기는 선선한 가을 기운이 ‘이 더위 또한 곧 지나가리라’고 희망을 갖게 하지만 불쾌지수는 여전히 한여름 수은주만큼이나 높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선풍기의 윙윙대는 기계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고 TV에서 흘러나오는 앙칼진 고함소리에 스멀스멀 불쾌한 감정들이 입 밖으로 흘러나올 즈음, 친구의 전화를 받고 탈출을 감행했다.

서울숲 입구에서 친구를 만나 산들산들 걷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운동화에 땀복까지 갖춰 입고 더운 숨 몰아쉬며 뛰는 아가씨, 자전거 타고 숲속 바람을 만끽하는 아이와 아버지, 커다란 부채로 잠든 손자의 더위를 쫓아주는 할머니, 인적이 드문 벤치에서 둘만의 추억을 쌓아가는 젊은 연인들, 도랑에 발 담그고 찰방찰방 수다에 여념이 없으신 어머님들. 모두를 품은 숲은 신기하리만치 넓고 평화로웠다. 도란도란 말소리에 자박자박 발소리, 신이 난 아이들의 환호성까지.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와 함께 숲이라는 공간에 썩 잘 어울렸다.

조용히 숲의 소리를 즐기고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달한 숲 공기에 취해 크게 한숨 들이마시려는 순간, 난데없이 등장한 빠른 비트의 음악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소리는 점점 다가와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앞질러가며 숲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진원지는 한 여성의 백팩. 요란한 불빛과 함께 쿵쿵 울리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가 나이트클럽인 줄 아나, 쯧.” 주변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소음을 피해 멀찌감치 돌아갔다. 이어폰 끼고 혼자 들으면 될 것을. 요즘 난청주의 기사 때문인지 간간이 보게 되는 장면이다.

무엇을 어떻게 즐기고 사는가는 개인의 취향이고 자유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나 하나 좋자고 모두를 언짢게 만드는 행위는 존중해야 할 취향도 아니고 자유에 속하지도 않는다. 시민의식, 공공예절은 어렵고 불편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편안해지기 위한 배려, 최소한의 절제일 뿐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씀씀이는 사회를 원만하게 하고 돌고 돌아 내게도 온다.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누구든 한 사람의 시민으로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그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떨까. 새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