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무라야마의 흰 눈썹
입력 2013-08-22 18:37
전후 일본 정국은 자민당이 주도했다. 1947년 공포된 일본국헌법 틀에서 총 31명의 총리가 등장하는데 자민당원이거나 자민당적을 가졌던 이는 총 28명이고 진보 쪽인 범사회당 계열은 가타야마 데쓰, 무라야마 도미이치, 간 나오토 등 겨우 3명에 불과하다.
가타야마는 47년 치른 전후 첫 선거에서 전전의 폭압정치에 대한 반발과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감을 타고 총리가 됐으나 정치력 부재로 집권 10개월을 못 채웠다. 간은 사회당에서 이탈한 사회민주연합 출신으로 자민당이 집권당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2010년 민주당 대표로서 총리에 올랐으나 이듬해 터진 3·11 동일본 대지진 수습능력 부재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사회당은 적잖은 역할을 해왔다. 평화헌법 개정이란 자민당의 압박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사회당은 진보그룹들과 연계해 이를 저지하는 데 힘썼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적극적인 반성을 강조했다. 우파의 질주를 막는 최소한의 방패 역할을 맡아왔던 것이다.
특히 무라야마는 과거 아시아 각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95년 발표함으로써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일본 정부의 공식 침략사죄 문서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가 총리가 된 배경을 보면 이 문제는 훨씬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94년 당시 무라야마의 사회당은 자민당 등과 연립해 집권여당을 꾸렸으나 의석 수에서는 자민당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차 총리지명전에서 자민당 후보를 야당이 비토하는 바람에 2차 지명전에서 그는 연립여당과 야당의 지지로 자연스럽게 총리에 올랐다. 야당의 지지는 자민당의 독주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결국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소신 있는 역사고백을 아시아 각국에 밝힐 수 있었다.
무라야마는 2000년 정계를 은퇴했다. 그런 그가 최근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자민당이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집권당으로 복귀하고 올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하면서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평화헌법 개정에 혈안이 돼 가는 것을 보고 18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자민당의 개헌과 독주를 저지해야 한다”며 호헌(護憲)을 위한 새 정당을 만들자고 호소한 것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올해 우리 나이로 구순이다. 길고 흰 눈썹을 휘날리며 역사 앞에 겸손하게 서서 진정으로 일본의 미래를 우려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그의 노익장에 박수를 보낸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