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기억을 매만지다… 윤성택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

입력 2013-08-22 18:42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기억 저편’ 부분)

윤성택(41·사진)의 두 번째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문학동네)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기억’이다. 기억은 과거의 일이지만, 존재의 의식과 무의식에 자리하며 현실에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일이란 그리움을 감각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억을 더듬는다’라는 말을 윤성택은 “온 신경을 유목한다”고 바꿔놓고 있다. 그런데 윤성택이 말하는 기억의 유목은 오래전 기억에서 지워진 망각까지도 추억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바닷속 석조기둥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기억은 아득하게 가라앉아 흔들린다/ 미끄러운 물속의 꿈을 꾸는 동안 나는 두려움을 데리고/ 순순히 나를 통과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 막막한 주위를 둘러본다 그곳에는 거대한 유적이 있다/ 폐허가 남긴 앙상한 미련을 더듬으면/ 쉽게 부서지는 형상들”(‘아틀란티스’ 부분)

윤성택은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는,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한 추억을 시적 상상력으로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기억에도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처럼 망각의 대륙이 있다는 것인데 종국적으로 그가 더듬어가는 것은 잃어버린 기억의 유적이자 그리움의 유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억과 그리움 사이에서 우울하게 부유하면서도 그 우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서 그만의 독특한 내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불현듯 또 다른 내가 생각을 입을 때마다/ 내 뜻으로 버려지는 나는, 검은 가면을 쓰고/ 불경한 무대 위에서 독백을 시작한다/ 나를 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극적으로/ 추억을 무모하게 만드는지 모른다”(‘시간의 환부’ 부분)

우울에 압도돼 마침내 언어마저 기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하는 방식이 윤성택의 시 쓰기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