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심정으로 창 들고 삶 응시한다… 서영은 에세이집 ‘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입력 2013-08-22 18:42


소설가 서영은(70·사진)은 2011년 10월 말부터 한 달 동안 돈키호테에게 들려 있었다. 그 들림은 그가 스페인 살라망카의 어느 진열장 앞에 있을 때 시작됐다.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조각품 그 자체라기보다 말을 탄 돈키호테가 높이 쳐든 창 때문이었고, 그 창이 돌연 나를 긴장하게 했다. 나는 감전된 듯 몸이 떨렸다. 인류 전체에게 혁명적 변화를 독려하고 있는 듯한 한 남자의 의지적 열정, 수 세기를 가로질러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메시지로서 내 심장을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12쪽)

며칠 후 지인을 통해 서울에서 공수해온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번역본을 열독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그는 맹렬한 전의(戰意)에 의해 높이 치켜든 창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즉시 스페인의 라만차 지역을 가로지르는 ‘루타 데 돈키호테(돈키호테의 길)’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홀로 창을 높이 쳐들고 무모한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돈키호테에게서 그는 삶의 원초적 열정과 에너지를 발견했던 것이다.

신작 ‘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비채)를 펴낸 서영은은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라만차의 한 시골귀족이 안주하던 자리를 접고 일어나, 자기를 넘어선 기사 돈키호테로 변신하고 절대선(絶對善)을 지상에서 이루어가는 그 메타적 공간을 탐색하는 게 목표였다”며 “지금부터 우리는 진정하고 영원한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행은 마드리드에서 시작해 세르반테스 기념관이 있는 알칼라 데 에나레스로, 콘수에그라의 풍차, 몬테시노스 동굴, 세르반테스가 구금돼 있던 아르가마시야의 감옥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 문득 세르반테스에게 이처럼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은 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작가는 결혼 삼 년 만에 파경의 아픔을 맛보았다. 그것은 ‘그럭저럭’인 삶에 안주하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심혼의 작가가 자신을 대신해줄 불명의 인물을 잉태하는 의미 있는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147쪽)

여행지 곳곳에서 작가는 돈키호테를 탄생시킨 세르반테스의 열정을 상상하며 영혼의 눈으로 삶의 근본을 응시하던 순간들을 텍스트에 새겨 넣는다. 서영은의 다음 여행지는 케냐의 오지 마을. 지난해 여름 세상을 떠난 한국인 여자 선교사가 봉사하던 곳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와 사랑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 믿음만이 현실을 넘어서게 해주는 힘”이라는 걸 선교사의 삶에서 찾아보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