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장편 ‘세 번째 집’ 낸 이경자 “상상만으로 글 쓰는 것은 죄악이지요”

입력 2013-08-22 18:41 수정 2013-08-22 14:18


“소설 배경인 일본 후쿠오카며 시모노세키며 북한이 바라다 뵈는 압록강까지 다 가봤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상상으로만 소설을 쓰고 싶지 않더군요. 상상으로 쓰는 건 죄 짓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자칫 오해와 그릇된 관념을 만들어내는 것이잖아요.”

30대 초반의 새터민 여성 성옥을 주인공으로 한 신작 장편 ‘세 번째 집’(문학동네)을 낸 소설가 이경자(65)의 목소리는 무더위 따윈 아랑곳없다는 듯 탄력 있게 들렸다. 22일 전화 통화에서다.

“지난 3년 동안 소설을 묵혔어요. 탈북 여성의 흘러온 삶이 나 스스로에게 곰삭듯 육화(肉化)돼 온전한 실감으로 다가오길 기다린 것이죠. 성옥의 모델이 되는 새터민 여성과 함께 압록강에 간 것도 이 때문인데, 국립중앙도서관 내 북한자료실에서 북한영화와 북한교과서 등도 빌려 봤어요. 북한에서 태어나 성장한 성옥의 생활 감정이 내게 스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죠.”

성옥의 할아버지는 일본 시모노세키 맞은 편 모지항에서 풍각쟁이로 살았다. 1944년 2월 후쿠오카 탄광으로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았지만 딱히 돌아갈 고향도 없다고 생각해 눌러앉은 뒤끝이었다. 그가 모지항에서 열다섯 살 소녀를 임신시켜 낳은 아들의 이름은 김대건. 그는 조센징으로 차별받는 게 싫어서 1967년 아버지와 함께 북송선을 탄다.

함경도 경성에 정착해 공장 화부로, 자동차 기사로 일하던 그는 처음엔 자신의 쓸모가 많아 스스로 대견했지만 점차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술에 취하면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대놓고 욕한다. 북한에서 태어난 그의 딸 성옥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콧김을 쐰 아버지를 멸시한다. 하지만 귀국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북한에서 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나머지 성옥은 북한을 탈출한다.

이제 남한에 새터민으로 정착한 성옥은 아버지 고향인 모지항을 찾아가 혈육의 뿌리를 실감하기도 하지만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언젠가 함께 살 따스한 집을 꿈꾼다. 그런 성옥에게 어느 날 집 짓는 남자 인호가 찾아오고 그녀의 마음은 서서히 인호에게 기울어진다. “‘하모니카집?’ 인호가 물었다. 성옥은 입에 손을 대고 하모니카를 부는 흉내를 냈다. ‘하모니카집은 정말 하모니카처럼 생겼어?’ 인호는 노동자 합숙소 같은 공동주택을 떠올렸다.”(56쪽)

하모니카집은 어린 성옥이 아버지와 함께 벽돌과 나무를 날라 지은 첫 번째 집으로 유년 시절의 포근한 기억이 담긴 그리움의 대상이다. 두 번째 집은 남한에서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반지하방이다. 그리고 인호가 노트를 꺼내 스케치해준 집이 그녀를 위한 세 번째 집이자 아직은 이 세상에 없는 집이다.

작가는 성옥도 그렇지만 자신이 탄생시킨 ‘인호’라는 가상인물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인호 역시 이혼남으로서의 상처와 실패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지요. 인호를 통해 ‘보편적인 한국 남자의 인도주의는 이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삼 세 번이라는 말이 있는데, 세 번째 집이란 삶의 완결성을 의미한다고 봐야겠죠. 제가 새터민 문제를 다룬 것은 그들을 통해 분단의 뿌리를 고구마 캐듯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이 소설을 읽은 새터민으로부터 ‘우리를 잘 이해하고 우리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했구나’, 하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