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또는 동결” 애매한 결론

입력 2013-08-21 18:48 수정 2013-08-21 22:20


보험료를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

보험료율 조정은 지난해 10월 출범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테이블에 올린 의제 중 핵심이다. 제도발전위가 21일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공개한 결론은 ‘인상 혹은 동결’이었다. 인상과 동결은 정반대 주장이다.

◇증세논란의 후폭풍=타협 불가능한 두 안을 다수·소수안도 아닌, 대안 1·2로 병기한 까닭은 뭘까. 한 위원은 “위원 다수는 보험료 인상에 동의했다. 그걸 두 개의 대안으로 적은 데는 정부 의중이 영향을 끼쳤다”며 “증세논란에 부담스러워진 정부가 ‘지금은 보험료를 올릴 때가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화난 중산층’의 존재가 국민연금 개편논의에서도 주요 변수로 작동한 셈이다.

총 15명(위원장, 정부측 2명, 민간위원 12명)으로 구성된 제도발전위는 5년마다 연금제도 전반을 평가한 뒤 재설계 권고안을 내놓는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종합운영계획안을 마련한 뒤 대통령 재가를 거쳐 10월 국회에 최종안을 제출한다. 공은 복지부로 넘어갔지만 정부가 보험료 인상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낮아졌다.

◇올려? 말아?=민간위원 12명 중 7명은 보험료율을 장기적으로 13∼14%까지 올리는 방안을 지지했다. 당장 이만큼 올리자는 건 아니다. 최대한 빠른 시점, 늦어도 2017년 전까지 보험료를 인상하기 시작하자는 것이다. 재정목표는 2083년 기준 ‘적립배율 2배(한해 지출 보험금의 2배 적립)’로 정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기금을 쌓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걷는 보험료가 주는 보험금보다 많은 현재는 기금이 커지지만 2044년 반전돼 2060년이면 기금이 바닥을 친다. 이걸 막으려면 주는 돈을 줄이거나(소득대체율 인하), 시기를 늦추거나(지급연령 상향조정), 걷는 돈을 올려야(보험료율 인상) 한다. 이미 1998년 지급연령(60세→65세)을, 2008년 지급액(소득대체율 60%→40%)을 깎았으니 손댈 건 ‘소득의 9%’로 낮은 보험료율밖에 없다. 인상안 지지 논리다.

한 위원은 “보험료 인상 시점이 늦어질수록 인상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10년에 걸쳐 4%포인트 정도를 올리지 못하면 갑자기 13∼14% 포인트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민간위원 5인은 “2040년대 중반까지 보험료율을 동결하자”는 쪽이다. 대신 기금을 소진해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적립방식을 부과방식(보험료를 걷어 그해 지급 보험금을 충당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가자고 말한다.

동결안을 주장한 한 위원은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건 2040년대 중반 이후 단계적으로 해나가면 된다”며 “그보다 앞서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책임, 기금운용의 원칙 등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부 차별 철폐, 출산·군복무 보상은 확대=보험료율은 애매하게 마무리됐지만, 몇 가지 제도적 개선안에는 합의가 이뤄졌다. 제도발전위는 노후보장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출산 및 군복무 기간 중 국가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대납해주는 국민연금 크레딧(가입기간 인정) 확대안을 제안했다.

우선 출산 크레딧을 첫째아이로 확대하되 12개월(상한 60개월)로 조정하고, 군복무 기간(21∼24개월)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으로 계산해준다. 국가는 가입자 대신 보험료를 100% 적립해야 한다. 현재 출산 크레딧은 둘째아이부터 12∼18개월(상한 50개월), 군복무 크레딧은 6개월만 인정해준다.

위원회는 또 가입자격으로 혼인 여부를 따져 결과적으로 전업주부를 차별하는 현 제도를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보험료를 낸 적이 있는 주부를 ‘가입이력자’로 분류해 본인이 사망하거나 사고로 장애가 생겼을 때 유족 혹은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결혼 전 보험료를 냈더라도 배우자가 돈을 버는, 무소득 주부의 신분이라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 약 350만명이 대상이다.

제도발전위는 더불어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자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적용대상은 최대 2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