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신흥국 비상] 출구찾는 ‘美風’에 인도·印尼 ‘휘청’… 동남아 도미노
입력 2013-08-21 18:39 수정 2013-08-21 19:58
아시아 신흥국들이 외환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시화로 신흥국에 몰려들었던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화폐 가치와 주가가 동시에 하락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국제금융 시장은 신흥국 위기가 글로벌 외환위기로 확대되지 않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충격파를 가장 먼저 맞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21일 국제금융속보를 통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따라 신흥국의 자금이탈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인도의 루피화(貨) 가치는 오후 5시58분 기준 달러당 64.44루피로 전날보다 1.21루피나 올라 또다시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에 인도 금융 당국은 국채금리 급등에 대한 대책으로 장기 국채를 매입키로 하는 등 긴박한 대응을 펼쳤다. 경상 적자를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루피화 국외 채권 발행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UBS는 달러에 대한 루피화 가치가 10.5%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 정부는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석좌교수를 중앙은행 총재로 선임했다. 하지만 그는 금융위기를 즉각 가라앉힐 수 있는 ‘마술 지팡이는 없다’고 토로했다.
인도의 위기는 취약한 경제구조 탓이 크다. 국내 산업 구조가 서비스산업인 3차산업 위주로 구성된 데다 해외 의존도가 높다. 재정 적자를 해외 자본으로 메워오던 중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가 커지면서 해외 자본이 철수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도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원자재 수출 부진으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 증가 폭이 1996년 이래 가장 급격히 늘어났다는 발표 이후 증시가 폭락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가치는 올 들어 약 10% 하락했다. 인도네시아 증시 자카르타종합지수는 지난 5월 고점 대비 20% 정도 떨어졌다.
태국 경제도 부진하다. 지난 19일 발표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였다. 1분기 -1.7%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태국 경제는 2008년 이후 처음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지난 5월 달러당 29바트 수준이던 태국 바트화 가치도 21일 오후 5시58분 현재 31.83바트를 기록했다. 19일과 20일 3.27%, 2.77% 각각 하락했던 증시는 21일에도 1.15% 하락한 채 마감했다.
말레이시아는 경상수지 흑자를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링깃화는 최근 3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터키도 연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리라화 가치가 올 들어 8.7%나 하락했다. 이들 신흥국은 부채라는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 채무가 늘어난 상태에서 돈줄이 마르기 시작하자 시장이 흔들리고 부실한 경제만 남게 됐다는 것이다.
프레더릭 뉴먼 HSBC 수석 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국가들은 차입으로 수월하게 성장을 샀다”며 “그 기간을 구조 개혁을 수행하는 시기로 활용했어야 했지만, 대신에 저리 자금으로 높은 성장률을 즐기기만 했다”고 꼬집었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인도의 루피화 가치 급락이 금융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인도의 외채가 국내총생산의 20.6%에 그쳐 이전 위기를 겪은 국가보다 적은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