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지휘자들 기회 만들어줘야”… 멘토로 나서는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입력 2013-08-21 18:35

“지휘라는 게 처음 시작할 때는 굉장히 쉬워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네 박자 세는 법만 익히면 다 배운 거다. 그런데 그걸 30년 정도 해야 ‘다섯’까지 갈 수 있다. 여기까지 간 지휘자는 많지 않다. 나 역시도 최근까지 ‘진짜 지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60)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은 21일 서울 세종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적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 좋은 지휘자가 되려면 ‘퍼스낼리티’가 중요하다. 재능과 성격, 인격, 리더십을 다 갖춰야 한다.”

정 감독은 다음 달 2일 서울시향의 ‘지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지휘자 6명의 멘토로 나선다. 지휘 마스터클래스는 서울시향의 전문 음악가 양성 프로젝트 중 하나. 신진 지휘자들이 ‘브람스 교향곡 1번’을 각각 30분간 지휘하면, 정 감독이 조언을 해주는 방식이다. 그는 “경험 없는 지휘자는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9, 30일 진행되는 말러 교향곡 9번 녹음 계획도 밝혔다. 독일 클래식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진행되는 서울시향의 일곱 번째 녹음이다. 그는 “오케스트라에 말러 9번 이상의 도전은 없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곡”이라며 “이 곡을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녹음한다는 것은 서울시향이 그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다음 달 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하는 ‘ECM 뮤직 페스티벌’에 둘째 아들 부부와 함께 참여한다. 아들 정선(31)씨는 독일 음반 레이블 ECM의 첫 한국인 프로듀서, 며느리 신예원(32)씨는 재즈가수다.

세 아들을 둔 정 감독은 “첫째만 피아노를 조금 시키고, 둘째 셋째는 일부러 음악을 안 시켰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일을 선택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음악을 안 시킨 둘째 셋째가 음악을 한다. 늦게 시작해 당장은 고생하고 있지만 직접 선택한 길인 만큼 멀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첫 피아노 독주 음반을 녹음했다.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2위 입상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피아노 솔로 음반 제의를 받아왔으나 늘 준비가 덜 됐다며 미뤄왔던 상황. 이번에 제작하게 된 이유는 한 살 된 손녀 때문이다. “둘째 아들이 나중에 딸이 컸을 때 들을 수 있는 음반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하게 됐다”는 것. 쇼팽 슈만 슈베르트 등의 소품 위주로 꾸며졌다. 그는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쑥스러워하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눈빛이 아득해졌다. 그는 “2, 3년 전까지는 더 이상 꿈이 없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평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꿈이 생겼다. 이북 음악가와 우리 음악가가 같이 연주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