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투쟁서 즐기는 놀이로… ‘유쾌한 시위’ 확산
입력 2013-08-22 04:58
지난 2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 대학생 박현탁(23)씨를 포함한 ‘서울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국정원 국민감시단’ 소속 3명(사진)은 ‘남재준 사퇴’ 구령에 맞춰 줄넘기를 했다. 컵라면과 삼겹살 불판, 물총까지 챙긴 이들은 알록달록한 무늬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국정원 앞으로 피서 왔다”는 박씨는 “시위가 재미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시위에는 500여명의 시민이 찾아와 박씨와 함께 고기도 구워먹고 어울려 춤을 추며 ‘남재준 사퇴’를 외쳤다.
지난 4월 17일 서울 연세대 정문 앞에는 철창이 등장했다. 원숭이, 토끼 등 동물가면을 쓴 동물보호단체 회원 3명이 철창 안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향해 “동물을 사랑합시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연세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가 개·돼지·원숭이 등 동물 6000여 마리를 실험에 사용할 계획이라며 ‘동물실험 지상주의’를 비판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대표는 “행인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집회·시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과격한 투쟁 위주의 시위에서 아이디어를 동원한 풍자와 재미가 더해진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경찰청의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00년 1만3000여건의 시위에 440만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시위 7762건, 참여인원은 160여만명으로 줄었다. 불법 폭력 집회도 크게 줄었다. 2001년 불법 폭력 시위는 215건 발생했으나 2010년도에는 33건으로 줄었다. 경찰 부상자도 304명에서 18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실제로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6차 국민촛불집회’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포크 가수 공연과 랩 공연이 펼쳐졌고 집회는 정확히 오후 9시30분쯤 끝났다. 김광석의 ‘일어나’를 함께 부른 시민들은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떠났다. 집회에 참여한 직장인 이모(53)씨는 “재미있게 잘 놀다 간다”고 했다. 기발한 형태의 시위도 있었다. 지난해 7월 서울 탑골공원에는 한손에 브래지어를 든 야한 옷차림의 여성들로 붐볐다. 한 여성운동단체는 여성이 자유롭게 노출할 권리를 주장하는 ‘슬럿워크’ 운동의 일환으로 시위를 열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