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감사制 있으나마나… 10명중 7명 그룹내 겸직

입력 2013-08-21 18:21 수정 2013-08-21 10:16

대표이사의 회사경영상황 등을 추상같이 감시해야 하는 사내 감사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대기업계열 감사 10명중 7명꼴로 겸직이 이뤄지고 있으며 심지어 지배주주나 그 가족이 감사를 맡고 있는 경우도 있어 독립성이 침해되고 있다.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 대해 감사를 제한하는 제도적 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21일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삼성·현대차·LG 등 우리나라 50개 대규모 기업집단의 1367개 계열사는 총 1457명의 감사를 선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여러 회사의 감사를 겸직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감사로 선임된 사람은 총 919명이다.

감사는 법인의 재산상황과 이사의 업무집행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부정이 있으면 총회나 주무관청에 보고하고, 회사가 이사에 대해 소송을 걸면 그 소송에 대해 회사를 대표하기도 하는 중책이다. 회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최우선 덕목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들 감사가 자기가 감사로 속한 기업 계열사의 감사·임직원 자리를 겸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919명의 감사는 총 2193개의 자리를 서로 나눠가지고 있었다. 감사 1명이 같은 기업 밑에서 자리를 여러 개 맡아 월급을 배로 받아가고 있는 것이다.

감사와 다른 자리를 가장 많이 겸직하게 해주는 기업은 CJ였다. CJ에 선임된 감사는 43명뿐이었지만 이들은 CJ계열사 내에서 무려 121개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GS그룹은 40명이 112개의 자리를, 삼성은 56명이 109개의 자리를 동시에 지키고 있었다.

감사 1인당 겸직 수가 가장 많은 기업은 태광이었다. 태광그룹은 8명의 감사가 51개의 자리를 맡아 감사 1인당 무려 6.38개의 자리를 겸직하는 중이었다.

계열사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사람을 감사로 올리는 ‘전관예우’도 비일비재했다. 전체 감사의 절반 이상인 597명은 계열사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특히 두산·교보·하이트진로·한진중공업·홈플러스·인천공항공사는 감사의 전부를 자기 계열사 출신으로 선임했다. 이 외에도 동양·농협·부영·영풍그룹 등이 전체 감사의 80% 이상을 계열사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채웠다.

지배주주나 가족이 해당 기업의 감사에 앉는 사례도 10명이나 됐다. 효성그룹은 3개 계열사에 지배주주인 조석래 회장 아들인 현준, 현상씨가 감사로 재직 중이다. 대성 김영대 회장의 부인인 차정현씨는 2개 계열사의 감사를 겸직 중이었다. 대성 계열사인 디엔에스피엠씨의 사내이사는 지배주주의 자녀가, 감사는 부인이 맡고 있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본인이 86.65%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감사를 직접 맡고 있기도 했다.

대기업 감사시스템이 이처럼 독립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 감사 선임규정에 이를 막을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현행 상법상 ‘회사·자회사의 이사 등 사용인을 겸직할 수 없다’라는 규제만 있어 퇴직 임직원의 자리보전이나 외부 로비 목적으로 인사 영입에 감사 자리가 이용돼도 막을 방법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에 감사의 자격제한 관련 법령을 최소한 사외이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수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은 “사외이사처럼 전현직 계열사 임직원뿐 아니라 회사와 이해관계에 있는 법인의 임직원까지 감사로 선임할 수 없도록 상법을 바꿀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