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정상회담 더 이상 미룰 일은 아니다
입력 2013-08-21 18:11
정치적 냉기류가 민간교류까지 단절시키는 지경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이 다 돼 가는데도 일본과는 정상회담은커녕 고위급 인사 간 진정한 대화도 눈에 띄지 않는다. 2011년 12월 마지막으로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사실상 관계가 단절됐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것은 일본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지만 이런 상태를 장기간 방치하는 것도 외교의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차대전 당시의 패권주의 의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 동북아 지역에서 우군을 거의 잃은 일본은 스스로 고립돼 우익 강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세계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던 일본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해 2류 내지는 3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국민들의 조바심을 아베 신조 총리가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조바심에 내몰린 일본과 정상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과연 필요하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과거 침략사를 부정한다고 참회를 요구하면서 이를 양국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다면 도대체 언제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독도 영유권 주장, 교과서 왜곡, 위안부 문제 등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문제와 외교관계 정상화를 나눠서 대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의 주장을 계속 고집할 경우 북한 핵 문제, 중국에 대한 대응, 경제협력 문제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준비도 돼 있지 않으면서 막연한 자존심과 자신감을 앞세워 미국과 중국을 겨냥한 강대국 외교에만 힘을 쏟다가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현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일본의 협조 없이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의 해답은 자명하다. 또 미국 정부가 애플과 삼성 간 특허분쟁에서 선택한 길을 보면 자국에 득이 될 때 우방인 것이지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사실도 느끼지 않았는가.
지난 8·15경축사에서도 언급됐듯 일본의 정치 지도자와 국민들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방안도 궁구할 때가 됐다고 본다. 아직도 우리 아이돌 일본 공연 때면 수만 내지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들고 있으며, 일부 일본 작가의 국내 인기는 웬만한 국내 유명 작가보다 훨씬 높다. 정치적으로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는 이면에 두 나라의 동질성을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길이 많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정치적인 냉기류가 민간 차원의 교류까지 단절시킬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양 정상 간 찬 기류가 가시지 않으니 정치 지도자들조차 상호교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마침 다음 달 5, 6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에 한·일 정상회담을 하자는 일본의 제안에 정부는 소극적인 입장인 듯하나 전향적으로 수용했으면 한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양국 관계는 이른 시일 내 정상화돼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란 감정을 드러낸 어수룩한 국가보다 냉정한 판단을 하는 영리한 국가의 손을 항상 들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