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모습으로 돌아온 ‘위숭 빠르크’… 레전드 향기 흩날리다

입력 2013-08-21 17:56

박지성(32·PSV 에인트호벤)이 후반 23분 교체돼 그라운드를 떠나자 필립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위숭 빠르크(박지성의 네덜란드어 발음)”를 합창했다. 박지성은 홈팬들의 열정적인 박수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21일(한국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인트호벤과 AC 밀란(이탈리아)의 2013∼2014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 박지성은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장해 후반 23분 교체될 때까지 68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타적인 플레이로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에인트호벤은 경기 초반부터 강호 AC 밀란을 거칠게 밀어붙였다. 전반 8분 박지성은 AC 밀란 진영을 파고든 뒤 감각적인 힐패스로 2선에서 침투하던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에게 슈팅 찬스를 만들어 줬다. 바이날둠은 강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지만 아쉽게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에인트호벤은 전반 14분 AC 밀란의 공격수 스테판 엘 샤라위에게 선제골을 얻어맞았다. 기가 꺾인 에인트호벤은 마리오 발로텔리 등을 앞세운 AC 밀란의 공세에 고전했다. 에인트호벤의 동점골은 박지성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후반 15분 박지성은 역습 상황에서 중원이 텅 비자 후방에 있던 수비수 제프리 브루마에게 패스를 찔러 줬다. 브루마는 박지성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드리블에 이어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깜짝 놀란 AC 밀란 골키퍼가 슈팅을 쳐내자 문전에 있던 에인트호벤의 공격수 팀 마타우쉬가 재치 있는 헤딩 슈팅으로 소중한 동점골을 뽑아냈다.

경기 직후 축구매체 ‘골닷컴 이탈리아’는 박지성에게 별 5개 만점에 4개 반을 부여하고 박지성을 경기 최고의 선수(Man of the Match)로 선정했다.

필립 코쿠(43) 에인트호벤 감독은 경기 후 박지성을 선발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나는 박지성이 어떤 선수인지 잘 알고 있다. 박지성이 꼭 필요한 경기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에인트호벤 선발 선수들 중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뛰어 본 선수는 박지성(54경기·4골)과 스테인 스하르스(6경기), 제프리 브루마(2경기)밖에 없었다. 반면 AC밀란 선발 선수들의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모두 더하면 290경기나 됐다.

코쿠 감독은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박지성이 필요했고, 박지성은 ‘산소탱크’답게 68분 동안 8810m에 달하는 거리를 뛰며 에인트호벤의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었다. 박지성은 이 한 경기를 통해 에인트호벤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양 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은 28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경기장에서 열린다.

한편, 에인트호벤은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신비로운 박지성(Mysterious Ji-Sung Park)’이라는 제목이 붙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박지성이 2003년부터 3시즌 동안 에인트호벤에서 뛰며 유럽축구 무대에 이름을 알려나갈 당시의 활약상이 담겼다. 1913년 8월 31일 창단한 에인트호벤은 100주년을 맞기 100일 전부터 ‘100일의 100년’이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구단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과 큰 사건들을 100회분의 영상으로 정리해 매일 한 회씩 공개하는 이벤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