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복에 헬멧… 착한 B급의 ‘상큼한 반란’

입력 2013-08-21 17:13


2013년 여름 가요계 강타한 5인조 걸그룹 크레용팝

이 팀의 성공 스토리는 특별하다. 걸그룹이 스타로 발돋움하는 데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던 공식을 하나도 따르지 않았다. 선정성 강한 퍼포먼스나 화려한 안무를 이 팀 무대에선 찾아볼 수 없다. ‘저렴한’ 분위기의 뮤직비디오는 실소를 자아낸다.

주인공은 올 여름 가요계를 뒤흔든 5인조 걸그룹 크레용팝이다. 음원 공개 당일 히트의 성패가 결정되는 가요계에서 이들의 노래 ‘빠빠빠’는 발표(6월 20일) 한 달여가 지난 뒤에야 반응을 얻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고 인기를 얻는 여타 아이돌과 달리 예능 출연도 거의 없었다.

요즘 ‘빠빠빠’의 인기를 실감하려면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를 찾아가면 된다. 클럽이나 야구장 등에선 노래 후렴구 ‘점핑(Jumping)’에 맞춰 사람들이 엇박자로 튀어 오르며 일명 ‘직렬 5기통 춤’을 추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소속사(크롬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21일 이같이 전했다.

“하루에 방송 출연이나 행사 섭외 등을 묻는 전화가 500통 넘게 와요. 광고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도 현재 10건이 넘고요. 전화가 끊임없이 오니 소속사 입장에선 인기를 실감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크레용팝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들은 지난해 7월 데뷔곡 ‘새터데이 나이트(Saturday Night)’로 활동할 당시부터 멋들어진 무대보단 코믹한 안무와 중독성 강한 노래를 내세웠다. 하지만 오랫동안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 ‘빠빠빠’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노래가 히트하자 요즘엔 과거 크레용팝의 노래나 뮤직비디오도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크레용팝의 성공 원인으로 ‘B급의 힘’을 꼽는다. 한 음반사 대표의 분석을 들어보자.

“크레용팝은 ‘B급’ 정서를 가진 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딘가 부족해보이죠. 그런데 ‘B급’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세련미가 부족해 대중에게 바로 어필하긴 힘들지만 ‘B급’이 대중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죠. 친화력이 있는 코드니까요. 거기다 크레용팝은 섹시미만 내세우지 않는, 여동생처럼 느껴지는 ‘착한 아이돌’이라는 점도 주효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B급 파워’를 제대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가수 싸이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우스꽝스러운 뮤직비디오와 안무로 세계를 뒤흔들었다. 실제로 ‘빠빠빠’도 ‘강남스타일’의 전철을 밟아가는 모습이다. 유튜브 상에는 ‘빠빠빠’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영상이 넘쳐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매체들도 “여자 싸이가 나타났다”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크레용팝은 지난 13일 세계적 음반 유통사 소니뮤직과 음반 유통 등과 관련된 계약을 맺었다. 소니뮤직 관계자는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국내 아이돌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크레용팝은 재미있는 요소, 자신만의 색깔을 가졌다”고 계약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 관심은 크레용팝의 ‘롱런’ 여부다. 이들은 다음달 미니음반을 발표한다. 크레용팝이 현재의 신드롬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가들 전망은 엇갈린다. 독특한 개성을 무기로 아이돌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갈 것이란 낙관도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 또한 적지 않다.

이민희 음악평론가는 크레용팝과 비슷한 콘셉트의 일본 걸그룹들을 거론하며 “크레용팝은 일본 걸그룹 문화를 과감하게 흡수한 케이스”라며 “대중에게 이 팀의 안무나 음악이 재밌는 오락거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인기그룹으로 장수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도 크레용팝 신드롬이 ‘반짝 열풍’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신선함이 이 팀의 최고 무기이지만 후속곡에서 ‘빠빠빠’ 이상의 신선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바로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