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잡아 먹는게 일상… 눈앞에서 어머니·형 공개 처형”
입력 2013-08-20 18:42 수정 2013-08-20 22:03
유엔 北 인권조사위, 탈북·납북자가족 인권침해 청문회
북한 주민의 인권침해 사례 조사를 위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조사단의 공개 청문회가 20일 연세대 새천년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청문회는 지난 3월 출범한 유엔의 첫 북한 인권조사 전문기구가 한국에서 조사활동을 벌이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미국과 유럽 의회 등에선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어왔지만 국내에서 국제기구 차원의 탈북자 청문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청문회에선 인권이 철저히 유린되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청문회에는 탈북자 출신 인권운동가 신동혁(32)씨와 평안남도 증산교화소(교도소) 출신 지현아씨 2명이 증인으로 나섰다.
◇“누룽지 약속 믿고 어머니 신고했다”=신씨는 ‘죽음의 수용소’로 불리는 북한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탈출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1982년 평안남도 개천 14호 정치범관리소(수용소)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신씨는 수용소 탈출을 기도하던 어머니와 형이 자신의 신고로 잡혀 총살형으로 공개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고, 자신도 수용소 내 지하 감옥에서 6개월간 고문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신씨는 “96년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얘기하는 것을 듣고 간수에게 이 사실을 신고해 6개월 뒤 내가 보는 앞에서 엄마와 형이 공개처형됐다”며 “신고 대가로 간수에게 누룽지를 배불리 먹게 해 달라고 부탁했고, 간수가 약속해 엄마와 형이 탈출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모든 걸 신고하는 게 법이라고 생각해 당시에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며 “수용소에선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만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다”고도 했다. 또 “엄마도 아버지도 나와 같은 죄수였을 뿐”이라고 회상했다.
신씨는 2003년 무거운 미싱을 옮기다 떨어뜨린 뒤 기물파손 죄목으로 손가락을 잘린 사연도 털어놓았다. 그는 “팔 다리가 잘릴 수도 있었는데, 간수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땔감 마련을 위해 산에 갔다 전기철조망을 넘어 탈출한 뒤 수백㎞를 이동해 중국으로 탈출했다. 그는 탈출 경위에 대해 “북한 병사에게 담배를 사주겠다고 약속한 뒤 국경을 건너 중국 상하이의 한국 영사관에 들어갔고 이후 6개월 만인 2006년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소개했다.
신씨는 “북한에선 정치범수용소 사람들을 죽여야 할 짐승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그들이) 저한테 보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북송 여성 강제낙태·영아살인=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지씨는 98년부터 네 차례 탈북했다 세 차례 중국 공안 등에게 잡혀 북송됐던 인물이다. 네 번째 시도 끝에 2007년 3월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지씨가 전한 북송자들의 삶은 인권이 짓밟히는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중국에선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신매매꾼이 많아 자신을 포함한 부녀자들이 브로커에 의해 여기저기 팔려갔다고 증언했다.
그는 98년 탈북 후 중국 공안에 붙잡힌 뒤 북송 과정에서의 비인간적인 삶도 증언했다. 북송자들을 임시 수용하는 함북 청진집결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씨는 “집결소에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안전원들이 들어와 아기 엄마한테 (물이 담긴) 그릇에 아기를 뒤집어 놓으라고 했다”며 “결국 엄마가 저항을 못하고 아기를 물그릇에 뒤집어 넣으니까 아기가 울다가 멈추고 물방울이 올라오면서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송되는) 임신 여성들은 앉았다 일어나기를 계속 시키거나 벽돌을 등에 지고 하루 종일 뛰게 한다”며 “그렇게 하면 그날 저녁 낙태가 된다”고도 했다. 지씨는 자신 역시 마취 없이 수술대도 아닌 책상 위에서 낙태시술을 받아야 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청문회에는 호주 대법관 출신인 마이클 커비 조사위원장,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소냐 비세르코 세르비아 인권운동가 등 COI 조사위원 3명이 이들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청문회는 24일까지 계속되며, 30여명의 탈북자 및 납북자 가족 증언이 이어질 예정이다. COI는 청문회 등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 3월 최종 활동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