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6∼17시간 중노동… 아소 탄광은 지옥이었다”
입력 2013-08-20 18:30
일제 강점기 조선인 광부들의 수난사 소개 책 출간
“하루 16∼17시간을 일하고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갱내에서 나올 수 없었다. 휴일에는 한 구석에 조선인을 모아놓고 이유 없이 때리는 노무관리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아소 탄광에서 일했던 조선인 광부들 얘기다. 아소 탄광은 현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의 증조부인 아소 다키치(麻生太吉)가 세운 곳.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부터 45년까지 조선인 1만여명이 이곳으로 강제 연행돼 혹사당했다.
아소 탄광에서 착취당한 조선인들의 수난사를 소개한 책 ‘조사(調査)·조선인 강제노동 탄광편’이 20일 일본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일본인 현대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 그는 각종 정부문서와 아소그룹의 사사(社史) 등을 토대로 책을 펴냈다.
아소 탄광은 조선인 광부들에게 ‘지옥’이었다. 폭력으로 노동을 강요했고 하루 수십 시간씩 한 달 꼬박 일해도 고작 임금은 20엔에 불과했다.
아소 탄광에서 1928년부터 일한 황학성씨는 “구타가 일상적이었고 케이블 선으로 얻어맞은 조선인들의 목덜미에 남은 뱀 모양의 상처자국에선 피고름이 나와 악취가 진동했다”고 책에 증언했다.
조선인들은 폭력과 혹사 금지, 최저임금 보장 등을 요구하는 쟁의도 벌였다. 이들이 만든 전단에는 ‘타도, 폭력 착취의 거수 아소 재벌’ ‘민족 차별대우 절대 반대’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맞아 죽기 일쑤였다. 각종 사고사와 병사, 구타에 의한 사망 등으로 아소계열 탄광에서 숨진 조선인은 약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죽고 나서도 억울했다. 탄광 측은 보상금 지급이 아까워 무연고자 묘지에 매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가해의 역사’가 뚜렷한데도 아소 탄광 창업주의 후손인 아소 다로 부총리는 “조선인 강제징용은 없었다”는 망언을 지금도 하고 있다.
백민정 기자,연합뉴스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