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 의식한 무상보육 정책목표 상실했다”… KDI, 보육·유아교육 재정지출 혹평

입력 2013-08-20 18:06


국책 연구기관이 정부의 보육·유아교육 정책에 대해 “원칙 없이 무상보육 목표를 추구해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다”며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정치권의 주도로 지난 4년 동안 관련 예산은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여성고용률을 높이고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는 게 비판의 주된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윤희숙 연구위원 등은 20일 ‘KDI 포커스’ 보고서를 통해 방만한 보육·유아교육 재정지출 실태를 꼬집었다. 특히 잘못된 지원 정책 탓에 쓸데없이 영아들을 보육시설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부 보육 예산은 2003년 약 3000억원에서 2013년 4조1400억원으로 10년 동안 13배 이상 증가했다. 유아교육 예산도 2005년 6378억원에서 2013년 약 4조원으로 늘어났다.

정책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재정 지원만 급증한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자료가 확인되지 않은 2개국 제외) 중 0∼2세 자녀를 둔 여성의 취업률(33.2%)이 보육시설 이용률(48.7%)보다 낮은 유일한 나라가 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0∼2세 영아의 경우 시설보육보다 주 양육자와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취업이나 열악한 가정환경 등의 어려움이 없을 경우 이 연령대의 보육시설 이용률이 낮은 게 정상적인 현상이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주도로 무상보육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책 목표를 상실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선 어머니의 취업 여부와 소득계층 등 기준에 따라 차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고 소득 불균형에 따른 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반면 우리나라는 0∼5세 전체 아동에게 하루 12시간 보육을 보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자녀가 있는 여성의 취업 여부 등에 따라 이용 시간을 달리하고 소득 수준에 따라 비용 부담을 차등화하는 내용의 보육지원체계 개편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후 대선을 거치면서 정부안과는 정반대로 전 계층의 전 가구에 동일한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보고서는 “서비스 질을 관리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며 “아동학대, 부실급식, 회계부정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소비자 만족도가 낮은 것은 근본적으로 수요증가 속도를 시스템 정비가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어린이집은 지역에 따라 최대 3억원의 권리금과 함께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 권리금이 ‘수익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돈을 벌기 위해 서비스 질이 보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어린이집이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