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 반발 ‘자궁 로봇수술’ 중단 잇따라
입력 2013-08-20 17:59
직장인 김모(23·여)씨는 이달 중순 서울 K대학병원에서 로봇수술로 자궁근종(물혹)을 제거할 예정이었다. 로봇수술비는 1000만원 정도로 개복수술에 비해 4배 많이 든다. 하지만 흉터가 적고 직장 복귀가 빠르다는 장점 때문에 큰 돈을 내더라도 로봇수술을 택했다가 얼마 전 갑자기 수술 취소 통보를 받았다. 병원 측은 “자궁수술의 포괄수가제 시행에 따라 로봇수술도 기존 수술과 같은 비용이 적용된다”면서 “그 비용으로는 도저히 로봇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으로 확대·시행된 ‘포괄수가제’의 불똥이 로봇수술로 튀었다. 포괄수가제는 검사나 투약, 수술 등 의료서비스 종류에 상관없이 미리 책정된 진료비를 내는 제도로, 백내장·편도·맹장·항문·탈장·자궁·제왕절개 수술 등 7개 질병군이 대상이다. 지난 6월까지 대형병원은 포괄수가제 적용 대상이 아니었지만 제도가 확대되면서 주로 큰 병원에서 이뤄지는 자궁 로봇수술이 논란이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당초 로봇수술에 포괄수가제 적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일부 병원이 문의해오자 일반 개복수술이나 복강경수술과 같은 비용(250만원 선)을 청구하라고 답변했다. 산부인과학회는 “심평원은 로봇수술을 포괄수가제와 별개로 생각했으나 내부자료 검토 후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형병원들은 자궁근종 로봇수술 비용을 기존 수술과 같은 수준으로 통제한다면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K대, S대병원 등은 이미 잡힌 로봇수술 일정을 취소하거나 의료진에게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개복수술로 치료할 수도 있지만 환자가 결혼 여부나 직장 사정 등으로 인해 비용 부담을 떠안고서라도 로봇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포괄수가제를 무리하게 적용하면 환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의료기술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학회는 심평원에 ‘로봇수술의 포괄수가제 제외’를 요청하는 공문을 최근 발송했다. 심평원과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의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