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부실·저질 청문회, 그러니 무용론 나오는 것

입력 2013-08-20 18:10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가 19일 제2차 청문회를 끝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사상 처음 국정원을 대상으로 실시돼 관심을 모았던 이번 국정조사는 원래 목적인 실체적 진실 규명에서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채 일방적인 주장과 막말이 난무하는 고질적 추태를 드러냈다.

이날 청문회는 시작부터 증인 가림막을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당초 여야는 국정원 현직 직원들의 신원 보호를 위해 가림막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야당 일부 의원들이 가림막을 ‘차단막’이라고 부르며 시정을 요구해 오후부터는 가림막 아래쪽 일부를 걷어내는 촌극을 연출했다.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박원동 전 국장과 민병주 전 단장에 대해서도 야당이 사실상 퇴직 직원이라며 얼굴 공개를 요구해 또다시 논란이 벌어졌다. 청문회 시작 전 깨끗이 매듭지었어야 할 절차 문제로 뒤늦게 입씨름을 벌이느라 오전 청문회는 공전됐다.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댓글 수사 외압 주장을 제기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인가, 대한민국의 경찰관인가”라고 추궁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과 증인 신분으로 출석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욕설이 섞인 발언을 주고받았다. 이 의원이 말다툼 끝에 회의장을 나가고 다른 새누리당 청문위원들도 퇴장해 청문회가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여야 청문위원들 사이에는 “말 끊지 마라” “말조심하라” “가는 귀 먹었느냐” “구제불능이구먼” 등의 막말이 오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애초 이번 국정조사 청문회는 철저하게 편이 갈려 과열 양상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데다 야당의 장외투쟁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당은 대선 불복을 연상시키는 야당의 장외투쟁 때문에 정치적 방어에 치중할 상황이었고 야당도 장외에 진을 친 마당에 청문회에서 뭐라도 건져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상대로 한 청문회가 증인선서 거부와 부실 답변으로 빛이 바랜 데 이어 19일 청문회까지 구태로 얼룩지자 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여야 청문위원들은 본질과 동떨어진 막말과 막된 행동으로 정치의 민낯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중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주장을 떠벌리기보다 송곳 같은 질문으로 실체적 진실을 이끌어내도록 충분한 준비를 하는 게 청문회의 권위를 되살리는 길이다. 청문회가 목적에 맞게 내실 있게 진행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은 반드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