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일본 협동조합에서 배울 것

입력 2013-08-20 17:30


일본 협동조합을 둘러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도 그 정도는 해야겠다는 의무감이다. 협동조합의 근간이 인적 결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문화적·사회적·제도적 특징을 반영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은 가장 유사한 특성을 공유한다. 물론 지금의 격차는 너무나 크다. 일본생협 조합원은 2665만명으로 유럽 18개국 조합원의 97%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3조3452억 엔으로 우리 4대 생협의 60배가 넘는다. 근로자협동조합 조합원 수도 6만8000명으로 프랑스의 2배 가까이 된다. 어떻게 하면 일본 정도 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발전해 온 것일까.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의 비전설정 과정이다. 일본생협연합회의 ‘21세기 이념’(1997년), ‘2020비전’(2011년), 일본협동조합 전체의 ‘협동조합헌장제정’(2012) 등은 단순한 선언문 작성이 아니었다. 협동조합의 방향성에 대한 긴 토론 과정이며 구성원 모두의 의견이 개진되고 수렴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었다. 가령 ‘2020비전’의 경우 ‘비전정책검토위원회’(2009년 9월)가 설립되고, 해외 현지조사, 논점집 발간, 각 기초단위까지 이어지는 토론회를 거쳐 2011년 6월에 공표된다. 비효율적일지 모르나 구성원 모두에게 조직의 정체성을 내면화시키는 중요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둘째는 조합원 교육에 많은 공을 들인다는 점이다. 가령 의료생협연합회(조합원 270만명)에서는 매년 80개 정도의 통신교육 과정이 실시되며 2011년 수강생은 1만6568명에 달한다. 인기 강좌인 ‘고령자를 위한 마을 만들기’ 교재를 보면 실현을 위한 각종 조사표와 작업순서, 성공 모델의 설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근로자협동조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6년 가나가와(神奈川) 지역의 조사에 의하면 조합원들의 노동시간 중 연수·학습·회의 시간이 전체의 10.4%에 달한다. 협동조합원으로서의 기능과 가치가 교육을 통해서 양성되는 것이다.

셋째는 철저히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도쿄와 가나가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생활클럽생협의 경우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한 도쿄생활클럽생협(1968년)을 만들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근로자협동조합을 설립(1982년)한다. 이후 지역의 간병·육아 등 복지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생협(1992년)이 만들어지고 다시 이를 운영하기 위한 여러 근로자협동조합이 창설된다. 친환경 소비, 복지사업, 일자리 창출이 지역단위에서 서로 연계되며 협동조합 간 협동의 동심원을 확대시켜 간 것이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아주 다이내믹하다. 일본의 협동조합계가 오랜 시간 법제화에 매달리고 있는 ‘사회적기업육성법’(2007년), ‘협동조합기본법’(2011년)이 우리에게는 이미 존재한다. 중앙정부, 지자체의 협동조합 육성 의욕도 아주 강하다. 지하철 차량 창문마다 협동조합을 지원한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나라는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다. 전 세계의 협동조합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며 수많은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는 나라도 드물다. 일본인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걱정이 많다. 걱정은 법과 제도 그리고 약간은 ‘과도’한 정부·지자체의 의욕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 스스로의 발전 역량이 강화되기 위한 머나먼 길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협동조합의 비전을 만들고 그것을 조합원 스스로 내면화하는 과정, 조합원을 교육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 협동조합 간 협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현장 활동가들의 길고 긴 실천을 요구한다. 이러한 운동의 실체 위에 법과 제도가 장착되어야만 협동조합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이 거의 없는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들 스스로 이러한 운동의 실체를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그것이 세계적인 규모에 달하며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벤치마킹 대상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김종걸(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