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국회 ‘복지증세 특별위원회’ 제안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입력 2013-08-20 17:41


“정치권 공동선언으로 ‘복지 위한 증세’ 국민 설득해야”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올 세제 개편안은 발표 하루 만에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았으나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복지 확대와 더불어 보편적 증세론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심 원내대표를 만나 증세·복지문제를 포함해 정치권의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과거 노동운동 시절에 ‘철의 여인’으로 불렸을 만큼 강성이미지가 적지 않았지만 복지와 세제문제에 대해서는 차분한 논리로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셨더군요.

“정부가 처음 내놓았던 소득세제 개편안은 소득공제 제도를 정비하고 중간계층부터 누진적 증세 효과가 나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제 개편안에 대한 국민적 반발의 핵심은 ‘왜 소득세만 손보고, 재벌·대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법인세는 쏙 빼놓았느냐’는 것이라고 봅니다. 중산층도 월 1만3000원 정도씩 추가부담을 해야 하지만 부담 자체보다는 조세형평성이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더구나 정부의 수정안이 부자증세 부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한 겁니다.”

-민주당의 ‘세금폭탄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민주당에 다소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것은 이번 세제 개편안이 소득세 분야는 비교적 합리적인 안이 제시됐던 것인데도 그것에 공세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오히려 복지재원 마련을 후퇴시키는 데 일조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조세저항이 심한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

“국민들이 복지에 대한 강력한 주문을 하고 있고, 국민 대다수가 나도 세금 낼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낼 용의가 있는데 다른 사람은 안 낸다’, ‘더 많이 내야 할 사람이 안 낸다’는 생각이 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 형평성의 문제가 조세저항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국민들이 더 내면 그만큼 복지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정치권에서 복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책임을 보이고 조세형평성을 바로잡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복지를 위해서 각자의 부담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치권에서 복지증세를 위한 공동선언을 하자는 제안도 하신 건가요.

“선거 때마다 ‘감세 포퓰리즘’을 내세우면서 조세제도가 누더기가 되고 양극화가 심화됐습니다. 사실상 증세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거든요. 복지를 늘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증세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말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같이 공동으로 선언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복지하려면 증세 필요하고, 조세형평성 개선 위해 부자증세 해야 하고, 중산층과 서민층도 복지국가 건설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보편증세 해야 한다’는 세 가지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하고 공동으로 국민들 앞에 내놓자는 것이죠. 정당별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청사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세 가지 제안을 대전제로 삼고 국회 내 ‘복지증세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정당별 로드맵을 바탕으로 최대한 조정해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보편복지에 대한 인식도 꽤 확산이 돼 있지만 ‘부자도 노령연금을 받아야 하나’라는 인식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복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중요한 주제라고 보는데요. 보편복지의 개념이 국민들에게 상당히 잘못 인식되고 있다고 봐요. 그동안 복지는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시혜적인 관점에서 이해돼 왔는데 이젠 그런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자기 노력과 능력에 따라 대접받을 수 있는 기본 토대는 갖춰줘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보편복지의 개념이거든요. 개별 복지 프로그램 속에서 이것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떻게 단계별로 하느냐는 것은 보편복지라는 큰 개념 속에서 얼마든지 논의 가능하다고 봅니다.”

-일종의 복지 목적세인 ‘사회복지세’ 신설도 주장하시던데.

“사회복지세는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 같은 누진적인 직접세에 추가로 부과하는 목적세입니다. 소득에 따라 10∼20%를 추가로 부과해서 약 18조원을 확보하고 복지에만 활용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사회복지세라는 세목을 만들어놓으면 목적이 분명한 만큼 조세저항이 줄어들 수 있는 데다 누진적인 직접세에 추가하는 거니까 복지재원도 누진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사회복지세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매우 유용한 세목이라고 봅니다.”

-여러 세제 중에 법인세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재벌·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맞는 법인세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고려하지 않고 법인세를 무조건 인상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만큼은 내자는 겁니다. 국제적 기준에 합당한 부족분은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얘기를 하면 ‘대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 등의 주장이 제기되는데, 세금 때문에 대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닙니다. 10대 그룹이 120조원 이상의 현금을 사내유보금으로 두고 있는데, 경기가 안 좋고 서민들의 구매력이 없기 때문에 투자를 안 하는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법인세를 걷어서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이고 이를 통해 서민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것이 경기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안철수 의원과 연대를 제안하셨던데.

“국민들이 안 의원에게 많은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안 의원이 정치를 오래하신 분이라거나 정당활동을 꾸준히 해 오셔서 정치를 잘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봅니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기대로 쏠린 것이란 얘기죠. 안 의원이 정치개혁을 위해서 온몸을 던지라는 주문을 국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안 의원이 정치개혁에 대한 실천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세력화에만 주력하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겁니다.”

-최근 개성공단은 한 고비를 넘긴 것 같은데 한 말씀 하신다면.

“이번 합의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전면적인 교류협력 시도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개성공단 재가동이 6자회담으로 가는 길목이 돼서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전력대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전력대란 과정을 보면 오히려 거꾸로 우리가 전력을 얼마나 과소비했었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전력대란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것이 결국 과소비를 줄이라는 거거든요. 문제는 대기업들이 자가발전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력대란 시기에도 가동 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기요금이 더 싸니까요.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전기료를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태양에너지나 풍력과 같은 대체 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서 소규모 분산형 에너지 체제를 확립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정부를 평가하신다면.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다만 방미(訪美)·방중(訪中)활동 등을 통해 외교활동은 비교적 잘하셨지만 내치(內治) 부분에 있어서는 제대로 뭔가를 보여주질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취임 초 인사참사에, 국가정보원 국기문란사건에 대한 대처, 그리고 최근 세제 개편까지. 그중에서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약속한 복지, 경제민주화 등과 관련해서 전면 후퇴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걱정이 가장 큽니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1959년 경기도 파주 출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진보신당·통합진보당 공동대표 △17·19대 국회의원 △정의당 원내대표(現) △저서 ‘당당한 아름다움’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공저)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등

만난 사람=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