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유승관 목사] 메떼오라 수도원과 수도사들의 삶이 주는 교훈

입력 2013-08-20 11:29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할 초심과 영성 (중)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위의 것을 찾으라!”

‘메떼오라(Meteora)’는 아테네에서 약 350KM 떨어진 뜨리깔라(Trikala)라는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방의 서단에 있는 수많은 수직 바위 군들과 그 위에 세워진 그리스 동방정교회 수도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총칭한다. 약 300~600미터에 이르는 기암절벽의 꼭대기에 지어진 수도원들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어떻게 저런 큰 바위 산들이 솟아났을까?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오랜 옛날 이곳 시실리아 지방은 하나의 갇혀진 내해(內海)였는데 그것이 퇴적층을 이룬 후 갑자기 물이 빠져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 솟아오른 바위들에서 바다 생물의 뼈들과 바닷자갈들이 쌓여 있어 이와 같은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 때는 총 24개에 달하는 수도원들이 있었지만, 오늘날 16개가 남아있고 그 가운데 여섯 개만이 수도사들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메떼오라’는 그리스어 ‘Ta Meteora’에서 유래된 말로 ‘공중에 매달려있는’이라는 뜻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절벽 꼭대기에 지어진 수도원을 바라다보면, 과연 당시 수도사들이 어떻게 저곳에 올라갔으며 또한 무슨 방법으로 수도원을 지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초창기에는 수도사들을 그물 속에 넣어 수도원의 창문을 통해 도르래와 밧줄을 이용하여 끌어올렸다고 하는데 천 길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장면을 담은 그림을 보면 정말 믿음이 없이는 선뜻 행하기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당시 수도사를 담은 그물이 수도사에게 “조심하시오! 내가 당신을 땅에서부터 바위 꼭대기까지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천당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다오.”라는 말을 들려줬다고 한다. 다행히 20세기 초 계단과 굴로 된 통로가 만들어져 방문자들의 출입이 용이해졌지만, 당시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한번 이곳에 들어오면 죽을 때까지 수도원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해발 613미터로 가장 높은 수도원인 메갈로 메떼오로 수도원 안에는 실제 수백 개의 유골이 여러 단의 선반에 빼곡히 쌓여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케 만든다. 또한 수도원 안에는 빵을 굽는 주방으로부터, 농기구와 가구들을 만드는 목공소, 의복을 만드는 곳, 기도소와 침실들,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포도주 저장 창고 그리고 이곳에서 기도하며 살다 죽은 수도사들의 무덤 대신 해골을 보관하는 방 등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이미 11세기경에 수도사들이 이곳에 올라가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연구 발표도 있지만, 1344년에 아타나씨오 메떼오리따라는 수도사가 처음으로 기어 올라갔던 큰 바위 언덕을 ‘메떼오라’라고 명명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수도사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이 높은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갔던 이유는 당시 데살리아라는 지역을 오스만 터키 제국이 점령하게 됨에 따라 접근이 어려운 높고 험한 곳이 필요했는데, 수도사들에게는 이 천혜의 기암절벽들이 피신처로서 아주 적절한 곳으로 판단했다. 처음에는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금식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그 후 서서히 사다리를 만들어 돌을 하나하나 올려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메떼오라 수도원의 3대 원칙은 ‘순교’, ‘말씀’, ‘행함’이었고 수도사들의 모토는 ‘위에 것만 생각하고 밑에 것은 생각하지 말자’였다. 이와 같은 영성과 정신으로 인해 그리스 동방정교회는 분열을 경험하지 않았고, 성직자나 성도가 타락을 하면 수도원으로 보내 자성과 회개를 통해 잘못을 뉘우치게 했다고 한다.

바울의 마게도니아 환상에 따라 유럽 선교의 문이 열리고 제2차 전도여행의 주요 경로였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에 뿌려진 복음의 씨가 결국 이 지역에 말씀을 상고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영성으로 이어지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메떼오라 수도원은 15~16세기에 가장 많은 발전이 있었다. 수도사들의 탁월한 영성과 순교자적 헌신으로 성경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벽화로 남기기 시작했고, 성경을 비롯해 귀중한 교회사적 자료와 아름다운 시가서와 책들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터키군의 침공과 1, 2차 세계대전 중에도 난공불락의 지형적 특성과 함께 수도사들의 순교적 방어로 말미암아 소중한 기독교 사료와 성화 등 가치 있는 보물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메떼오라’ 수도원과 수도사들의 삶이 주는 교훈

필자는 140여 계단과 바위 동굴 문을 지나 해발 600여 미터 절벽 위의 수도원을 둘러보았다. 수도원의 정상은 생각보다 넓었고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집들은 마치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하얀 뭉게구름이 손에 잡힐 듯 드높은 하늘 정원에서 오로지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독대하며 작은 텃밭을 가꾸어 먹거리를 해결하는 수도사들의 단순한 삶(심플 라이프)이야말로 인간의 욕망과 세상의 욕심을 멀리하고 오직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영성의 산실이요 성령의 다락방이 아닐까 싶었다. 수도원 복도에 가로로 길게 매달린 나무 종은 종소리조차 묵상과 기도를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쓴 세심한 주의와 배려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메떼오라 수도원과 수도사들의 삶을 돌아보며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방정교회의 교리의 옳고 그름과 시대적 변화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 같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또한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불변의 진리를 위해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하는 우리들이 지켜야할 덕목은 무엇인가? 에 대한 자문자답이기도 하다.

첫째, 기도와 말씀의 시간을 최우선으로 삼는 삶이다.

비록 중세의 수도사들처럼 평생 그러한 삶을 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하루의 일정 시간을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이기는 영성을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사람의 욕망과 세상의 욕심을 멀리하는 삶이다.

탐심은 죄를 촉발시키는 방아쇠이다. 인간에게 선악과가 될 수 있는 돈, 명예, 권력, 섹스와 같은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물리치는 길은 이런 것들과 마주치지 않고 그런 것들을 멀리하는 삶이다.

셋째, 주님의 영광과 그 나라와 의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다.

진전한 헌신은 행동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영성은 실천하는 삶으로 다져진다. ‘순교’, ‘말씀’, ‘행함’이라는 수도원의 3대 원칙과 ‘위에 것만 생각하고 밑에 것은 생각하지 말자’는 수도사들의 모토처럼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진리의 말씀을 지키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영원히 변치 않는 승리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세상 욕심에 사로잡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대를 물려 세습하고자 온갖 정치력과 인간적인 꼼수를 도모하는 일부 교회 사업가들, 경건을 자기 이익의 방도로 삼아 불의와 권력에 타협하는 일부 평신도 지도자들, 마치 죽은 물고기가 오염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듯 잘못된 세태를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일부 용기없는 크리스천들, 세상의 작은 이익 앞에서도 일희일비하며 한 입으로 감사와 불평을 내뱉는 일부 유약한 성도들...,비록 일부이지만 전부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그들 모두가 이곳 ‘메떼오라’가 주는 무언의 교훈과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유승관 목사(선교 전략가, SIM International Consultant)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