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학배] 性인지적 치안활동 확산돼야
입력 2013-08-19 18:25
1970년대 서구 여성학자들은 성에 따른 차별적 공간경험을 지적하면서 도시·건축공간의 성 형평성을 높일 것을 주장해 왔다. 이 움직임은 일상생활에서 성에 따른 차별 없는 생활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성 친화 도시’ 개념을 낳았으며, 1982년 캐나다에서 ‘밤길 안전하게 다니기 캠페인’으로 현실화되었다. 이후 많은 국가에서 도시·건축공간을 젠더(Gender) 중립적이 아니라 성인지적(性認知的·Gender-Sensitive) 관점을 반영하여 설계함으로써 성 형평성을 높여 왔는데, 그 바탕이 되는 관점은 바로 ‘안전’이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두운 귀갓길을 불안감을 안고 총총걸음으로 걸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안심하고 자유롭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기본권에 대한 침해이다. 인구의 50%, 최대 치안수요자인 여성들이 범죄로부터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은 가정의 평온, 나아가 모든 시민이 행복할 수 있는 첫째 조건이다.
울산경찰은 지난달부터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원룸형 주택 밀집지역을 ‘여성안심마을’로 지정한 ‘성인지적 치안활동’을 하고 있는데, 범죄발생이 상당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시민, 자치단체, 경찰이 ‘협동하는 행정’을 보인 성과라 더욱 의미 있다 할 것이다.
경찰은 마을에 여성안심마을임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걸고, 집중순찰활동을 편다. 시민들은 순찰봉사와 음주문화개선 캠페인을 하고, 편의점들은 위급상황의 여성이 피난할 수 있는 안심지킴이집이 되었다. 자치단체는 보안등, CCTV 등 방범시설 보완을 검토하면서, 우선 구역 내 4개의 공원에 나무 가지치기를 하였고, 방범초소 설치와 안심귀가(동행)서비스도 시범 시행할 예정이다. 시의회에서도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개념을 반영한 조례 개정을 검토하는 협동 행정을 하고 있다.
여성 거주자가 많은 원룸형 주택 밀집지역의 범죄예방을 위해 몇 가지를 제시해 본다. 첫째, 원룸형 주택 건축시 범죄예방을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원룸형 주택은 임대 수익 목적으로 지어져 안전시설이 미흡하고, 건축주가 함께 거주하는 경우도 드물어 시설 관리도 소홀하다. 그래서 경찰의 순찰, 방범CCTV나 보안등 설치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된다.
외국에서는 안전을 위한 건축 조례 제정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주(州)별로 조례를 제정하고 있고, 영국은 국가주도 하에 방범환경설계제도(SBD·Secured by Design)를 시행하고 있고, 호주, 일본 등에서도 일찍이 지방정부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원룸형 주택에 사는 1인 가구를 위한 방범시설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1인 거주자는 신체 안전에 대한 니즈가 높은 반면, 고립된 생활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경찰이 거주자를 만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1인 거주자가 스스로 방범시설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범시스템 개발 등 자위방범시설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치안서비스는 이제 시민, 자치단체, 경찰 등 공동의 생산자에 의한 공동의 생산물이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성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공식의제로 채택하였고, 한 국가의 모든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되도록 요구하였다고 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협동하여 추진하는 ‘여성안심마을’ 형태의 성인지적 치안활동이 확산되고, 안전을 위한 인프라도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학배 울산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