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큰 폭 요금 인상 없는 전기수요관리는 허구
입력 2013-08-19 18:25
정부가 18일 내놓은 ‘정보통신기술(ICT)기반 에너지 수요관리 방안’은 에너지 수요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첨단 방식을 도입키로 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대책이다. 첨단 방식이란 밤새 절약해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비축해 둔 심야전력을 전력 피크시간대인 한낮에 내다 팔 수 있게 해 전력수급의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아낀 만큼 돌려준다’는 인센티브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피크시간대 할증요금을 대폭 올리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기업들에 에너지 절감 시설의 도입 필요성을 절감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ESS와 이를 관리하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설치 비용이다. 1㎿급 ESS를 실증운용 중인 삼성SDI의 경우 관련 투자비용이 총 16억원 들었다고 한다. 연간 절감되는 전기요금 1억2700만원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12년 이상 걸린다. 정부가 세액공제 혜택과 투자비 일부를 지원한다 해도 당장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단지나 삼성 같은 대기업에나 가능한 방안이다. 결국 새 수요관리 방안은 전기 수요를 줄이거나 억제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도 없다.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 선진국의 절반이나 3분의 1에 불과하고 가정용 요금을 포함한 전반적 전기요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전기요금을 생산원가나 시장가격에 따라 책정하지 않고 수출산업 지원이나 물가안정의 방편으로 삼아 낮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인당 전기 소비량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두세 배 높은 선진국을 거의 모두 앞질렀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국내 전력 소비증가율은 OECD 평균의 5배가 넘는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위주로 전기요금 전반을 대폭 인상하지 않고는 이번과 같은 전력수급난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10월 요금체계 개편작업 때 피크타임 할증요금의 인상, 전압별 요금체계 개편 등을 포함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력요금 인상 여부와 대폭, 혹은 소폭 인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 없는 수요관리’는 두 다리를 새끼줄로 묶고 달리기 시합에 나서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다.
이제는 전기요금에 대해서도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전기요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점을 솔직히 알리고 국민을 설득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값싼 전기에 익숙한 기업과 국민들에게 이런 선택은 수용하기 어렵고,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될 터다. 그렇지만 유예기간을 포함해 5∼10년간 일정 폭의 인상률을 적용하는 식의 장기인상 계획을 밝힌다면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