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없는 복지 갈등] “중산층에 밀린 증세 기업에 불똥 튈라…” 재계 전전긍긍
입력 2013-08-20 04:43
정부와 여당의 ‘증세 없는 복지’ 방침에 재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가 서민·중산층 반발을 의식해 “증세도 없고, 복지 축소도 없다”고 강조하지만 재계는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정부가 복지 정책을 계속 추진하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고, 결국에는 기업의 주머니를 털어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복지정책의 완급 조절을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19일 “세금 폭탄 논란으로 중산층과 서민층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걷을 데는 기업밖에 더 있겠느냐”면서 “정부가 복지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어떻게 복지 정책을 추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에게 과도한 세금 부담을 안길 경우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로 인해 경제 활성화는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 “복지 정책의 속도 조절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거위 깃털’ 발언 등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자 정부는 세제 개편 수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었다. 정부의 수정안으로 세수 확대분은 당초 1조3000억원에서 8600억원으로 줄었다. 4400억원의 세금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정부는 “누적 개념으로 앞으로 5년간 공약 재원을 12조원 조달할 계획이었는데 수정안으로 1조원 정도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줄어든 세수를 메울 방법이 확실치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고소득 자영업자와 대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를 해법으로 꺼내 들었다. 지하경제 양성화도 거듭 강조했다.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정부가 기업들을 겨냥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재계에서 증폭되는 이유다. 법인세 등 추가 증세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정부의 입장도 신뢰하기 힘들다는 게 재계의 분위기다. 지하경제 양성화도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경제사정에 시달렸던 재계로서는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재계는 정부가 기업에 과도한 세금 부담을 지울 경우 경제 활성화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투자할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 경영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재계는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명분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 것을 요구했다. ‘증세 있는 복지’를 천명하거나 ‘증세가 힘들어 복지 정책을 확대하기가 힘들다’고 솔직히 고백할 것을 바라는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증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면 복지 정책의 속도 조절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재원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복지 정책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정부가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