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박평형水’ 처리시장 최강자로 뜬다

입력 2013-08-19 18:17


규제는 때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선박의 균형을 잡기 위해 주입하거나 배출하는 해수(海水)인 선박평형수(Ballast Water) 처리설비 시장은 해양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규제에서 비롯됐다. 규제 때문에 열린 최대 80조원 규모의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처리설비 기술 최다 보유국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규제가 기회로=19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연간 50억t 이상 선박평형수가 선박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벼룩, 게, 독성조류 등 7000여종의 해양생물이 포함돼 있다. 선박평형수에 포함돼 각 바다를 이동하는 해양생물은 대부분 새로운 바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지만 살아남은 종들은 강한 번식력으로 연안 생태계를 교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부터 지중해가 원산지인 지중해 담치가 왕성한 번식력으로 토종 홍합 서식지를 잠식 중이다.

해양생태계 교란이 심각해지자 국제해사기구(IMO)는 2004년 선박평형수 처리설비를 강제하는 ‘선박평형수관리협약’을 채택했다. 해수를 주입할 때 미생물 등 해양생물을 살균하는 처리설비를 설치하라는 것이다. 협약 채택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현재 37개 회원국이 협약 비준을 마쳤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말쯤 협약 요건을 충족하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2015년부터 새로 건조되는 선박은 즉시 처리설비를 설치해야 하고, 기존 선박은 일정한 유예 기간을 거친 후 설비를 설치해야만 한다.

해수부에 따르면 선박평형수 처리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선박은 세계적으로 약 6만8190척에 이른다. 설치비용(8억∼12억원)을 감안할 때 지난해부터 2019년까지 60조∼80조원에 달하는 새로운 조선 기자재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80조원 ‘블루오션’을 잡아라=최대 80조원의 ‘블루오션’인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은 선두 주자로 꼽힌다. IMO가 기본 승인한 기술 31개 가운데 11개를 국내 기업이 보유해 국가별로 최다 기술을 보유 중이다. 우리 기업은 전기분해, 자외선(UV), 오존 등 다양한 방법의 처리설비 기술을 갖고 있다. 독일과 일본이 5개씩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노르웨이(3개), 중국(2개)이 뒤를 잇고 있다.

기술 선점은 수주로 이어지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처리설비를 계약한 1600척 중 국내 업체가 871척을 수주해 약 7700억원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시장에서 현재 테크로스, NK, 파나시아 등 국내 업체와 스웨덴의 알파 라발, 미국의 하이드마린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유럽 메이커를 선호하는 선주들의 영향과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알파 라발이 국내 업체와 선두권을 형성 중이다.

향후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이다. 미국은 현재 기준보다 1000배 강화된 별도 규제를 추진 중이다. 물동량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항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수부는 이를 위해 2017년까지 120억원을 투입해 국내 업체와 함께 기술 선점을 추진한다.

김성태 테크로스 전무는 “향후 선박평형수 시장은 미국의 규제 내용, 협약 발효 시기, 해운업의 시황 등이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면서도 “국내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기술 개발과 정부의 지원이 이어지면 선도적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