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인 만드는 마사회 장외발매소, 더 늘린다고?
입력 2013-08-19 18:06 수정 2013-08-19 22:48
구걸해 번 돈·건설현장 일당… 탈탈 털어 경마에
지난 2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동의 한국마사회 영등포지점 앞은 경마를 마치고 나온 수천명이 뒤엉켜 혼잡했다. 이곳엔 모니터로 경마 중계를 보며 마권을 매매하는 장외발매소가 있다.
인근 주차장에는 오토바이 50여대가 빼곡히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 경마하러 온 퀵서비스 배달원들이 세워 놓은 것이다. 마권과 OMR 카드, 경마정보지가 어지럽게 버려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인근 사우나에서 먹고 자며 구두닦이를 한다는 이모(57)씨는 “오늘 일해서 2만원 벌었는데 여기서 2만5000원 잃었다”며 머쓱해했다. 고시원에 사는 일용직 건설노동자 조모(60)씨는 “7월에는 한 번도 돈을 딴 적이 없는데 오늘은 5만원 땄다. 운이 좋다”며 웃었다. 그는 숙련공이어서 일당을 15만원씩 받지만 경마를 하느라 저축은 한푼도 못 했다고 했다.
조씨는 “영등포 주변에는 나 같은 사람이 허다하다. 노숙인과 건설 일용직의 80%는 경마중독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숙인 정모(53)씨는 1주일 동안 구걸해 번 돈으로 주말마다 경마장을 찾는다. 식사는 무료 급식으로, 잠자리는 고시원이나 노숙으로 해결하고 술값을 제외하면 오로지 경마에만 돈을 쓴다. 김모(42)씨도 경마에 중독된 노숙인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1주일에 30만원쯤 버는데 몽땅 경마로 탕진한다. 김씨는 “언젠가 주머니에 380원밖에 없었는데 경마에서 ‘대박’을 맞아 7000원이 됐다. 이 맛에 노숙을 해도 경마장에 간다”고 말했다.
마사회가 민주통합당 박민수 의원에게 제출한 경마장 이용자 현황에 따르면 2011년 이용객 47%는 월 소득이 3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서민이었다. 200만원대 25.2%, 100만원대 14.7%였고, 100만원 미만도 7.1%나 됐다. 지난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장외발매소 이용자 682명을 조사한 결과 69.3%가 도박중독 상태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마사회는 장외발매소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2009년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장외발매소 12곳의 면적을 넓히는 데 1200여억원을 투자했다. 또 최근 서울 원효로에 18층 건물을 짓고 용산역 인근 장외발매소의 확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어 지역주민의 반발이 거세다. 현재 마사회 장외발매소는 30곳이다.
전국도박피해자모임 강신성 사무국장은 “장외발매소에선 베팅만 이뤄져 사행성이 매우 높다”며 “도심 장외발매소를 외곽으로 옮겨 접근성을 낮추거나 일부 발매소는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