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집트 경제원조 중단 착수… EU 긴급 외무장관 회의 열기로
입력 2013-08-19 17:38 수정 2013-08-20 00:21
이집트 군부의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에 대한 대규모 유혈 진압을 앞두고 양측 간 협상을 중재하던 유럽과 미국 등 서방국들이 이집트 군부에 철저히 우롱을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실패한 과정을 파헤친 특집기사에서 이집트 군부를 설득하던 레오나르디노 레온 유럽연합(EU) 협상대표와 윌리엄 번스 미 국무부 부장관 등은 진압 1주일 전까지 군부와 임시정부가 수감된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2명을 석방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석방 약속을 계속 연기했을 뿐 아니라 외교적 노력은 끝났다며 시위대에 최후 통첩성 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는 국영통신사의 보도도 부인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앞으로 발생할 폭력에 대한 모든 책임은 무슬림형제단에 있다”는 요지의 성명이 발표됐다.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의 보좌관이자 이슬람연합세력의 협상대표인 아무르 대랙은 “미국과 유럽 외교관들은 (이집트 군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며 “쿠데타 정부가 협상에 실패해 결국 진압에 나섰다고 주장하기 위해 그들을 끌어들였지만 실제로 협상은 없었다”고 NYT에 말했다. NYT는 미국과 유럽 외교관들도 ‘속았고 조종당했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 이집트 군부의 강경책이 정당하다는 점을 설득시키려 노력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친분이 있던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 등 이집트 장성들에게 시위대를 공격하더라도 미국이 연간 15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원조를 중단하는 등의 강경책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7월 초 이후 17차례나 시시 장군과 통화했는데 시시 장군은 되레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무슬림형제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미국은 일단 이집트에 대한 경제 분야 원조 중단 절차에 착수했다. NYT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집트 군부의 유혈 진압을 쿠데타로 규정할지 아직 결론 내리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 조치에 들어간 것”이라며 “경제 원조 가운데 민간 부문 관련 지출을 보류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집트 공무원이나 교사, 병원 행정가 등을 상대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이 잠정 중단될 전망이다. 쿠데타로 규정되면 관련법에 따라 경제 원조 지출이 자동 중단된다.
미국 정부는 이집트 정부에 연간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의 재정 원조를 하고 있다. 2014년 예산안 기준으로 이집트 원조금은 모두 15억5000만 달러로 13억 달러는 군사 분야에, 2억5000만 달러는 경제 분야에 할당했다. 미국은 이집트와의 합동 군사훈련을 취소했지만 아직 군사 원조 중단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유럽연합(EU) 소속 28개 회원국들도 이집트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2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외무장관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