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아픈 베네치아
입력 2013-08-19 18:12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로 불리며 영화제를 열어 우리에게 많은 상을 주기도 하고, 시오노 나나미의 책으로도 소개됐다. 이 영화제에서 우리나라는 1987년 강수연이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2년에는 ‘오아시스’로 이창동 감독이 감독상을, 지난해에는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 도시가 최근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뉴스위크에 소개된 여행작가 엘리자베스 베커의 신간 ‘초과예약’에 따르면 인구 6만명이 채 안 되는 베네치아는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2000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았다. 외국인이 하도 많이 찾아와 높아진 집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주민들이 이 지역을 떠난다고 한다. 기념품점과 고급 부티크가 토박이 장인들의 가게를 몰아내고 학교, 병원, 식료품점 등 서비스도 엉망이 됐다. 오죽하면 유엔이 섬과 섬을 이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관광객에 의해 물 속에 가라앉을 위험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겠는가.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도 적지 않아 한국인을 상대로 한 민박집도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겼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의 경우 약간의 투자를 통해 한 달에 1000만원을 벌어들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소문 때문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였다. 베네치아 당국이 불법 임대와 전세를 사실상 묵인하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여행객 폭주로 망가진 곳이 베네치아뿐만도 아니다.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도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드는 여행객으로 유물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우리의 상식과 달리 여행객이 몰린다고 현지 주민들의 소득이 반드시 오르는 것도 아니다. 관광수입의 7% 정도만 현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정부 관리나 이 관리와 연줄이 닿는 사람이 돈을 번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다.
관광은 세계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하기도 하지만 환경을 더럽히는 주요 오염원 가운데 하나다.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를 망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비수기를 택하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시간대에 명소를 찾으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튼 베네치아가 아프다니 우울하긴 하지만 다음 주 개막하는 7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숨 막히는 무더위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시원한 소식을 전해줬으면.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