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는 선한 목자인가?

입력 2013-08-19 18:36


요한복음 10장 11∼21절

예수님 당시 백성의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이나 장로들, 대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의 ‘목자’였습니다. 그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오실 메시아를 소망하며 살도록 가르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 목자가 되지 못하고 절도와 강도요 삯군 목자가 돼 버렸습니다. 백성의 영혼을 상하고 죽이는 강도같이 됐고, 오직 삯을 위해 일하는 삯군이 됐습니다.

에스겔 34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은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배만 채우고 살찐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탄식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양의 목자가 되셔서 흩어진 양을 모으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며 상한 양을 싸매주며 병든 양을 강하게 하고 양들을 먹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겔 34:12). 바로 그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이스라엘 가운데 목자가 찾아왔습니다. 거짓 목자가 판을 치며 양의 생명을 약탈하는 곳에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바로 “나는 선한 목자”라고 선언합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찬양했던 그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제 양도 아니라 이리가 오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맹수가 오면 생명을 걸고 싸워 양들의 생명을 지킵니다. 그러나 삯군은 품삯이 목적이기 때문에 품삯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바리새인이나 당시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삯군이었습니다. 여기서 삯군은 단순히 삯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삯을 목적으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나 백성을 위해 일하는 자들에게 그 몫을 다 정해주셔서 생활대책을 다 세워주셨습니다. 자기 생활수단을 위해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함에 전념하도록 그들의 생활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봉사하고 백성의 영혼을 사랑함에는 관심이 없고 돈에만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로 살아가는 내게도 똑같은 문제가 놓여 있음을 봅니다. 나는 좋은 목자가 될 수도 있고 삯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목회자에게 주는 사례는 품삯이 아니라 생활비입니다. 목회에만 전념하도록 그 생활을 교회가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목사가 목회에 전념하지 않고 딴일 보기에 바쁘면서 생활비에만 마음을 둔다면 삯군 되기 십상일 것입니다. 삯군은 이리가 오면 달아나겠지요.

여름 수련회가 마무리되면서 처처에서 교회를 공격하는 무리들의 목소리가 커 가며,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의 발호와 교회 내 분쟁으로 어지러운 소리들이 들립니다. 그 가운데 세미한 주님의 목소리가 크게 들림은 무엇 때문일까요.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말씀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선한 목자로 헌신하고 있는가’라고 물어보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주께서 나를 아시듯, 나도 맡겨진 양을 알고, 그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의 길을 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나는 지금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따르고 있는가 물어봅니다.

심강기 목사 (광주 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