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자’ 한국의 갈 길을 말한다

입력 2013-08-19 17:27 수정 2013-08-19 21:19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기념 콘퍼런스 주강사로 방한하는 몰트만 박사 누구인가

오는 10월 1일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및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개교 8주년 기념 콘퍼런스 주강사로 방한하는 위르겐 몰트만(87) 독일 튀빙겐대 석좌교수는 살아있는 신학계의 전설이다. ‘희망의 신학자’로 불리는 그는 이번 방한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몰트만 박사는 세계적인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1975년 첫 방한 당시 한국은 산업화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한신대 등에서는 교수들이 삭발까지 하면서 독재정권과 맞섰다. 그는 한국의 행동하는 지식인들에게 심정적 유대를 표했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의 압제받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했던 몰트만에게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제 한국은 38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의의 문제, 불안한 미래가 한국인들 앞에 놓여있고 교회 역시 약화되고 있다. 세계적 노신학자의 방한은 그래서 더 반갑다.

◇체험에서 끌어낸 희망의 신학=그동안 몰트만 사상은 국내에 다양한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해석돼 왔다. 희망의 신학, 정치신학, 삼위일체적 종말론 등으로 불렸고 어떤 경우는 민중신학으로, 어떤 경우는 정통 보수 신학으로 비판을 받았다. 사실 그의 신학은 한마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헤겔과 칸트 등 독일 관념론부터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 본 회퍼 등 이른바 신정통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학을 ‘성서적 근거를 갖는 신학’ ‘종말론적 방향을 가진 신학’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신학’ 등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의 이런 신학은 인류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신학, 하나님께 대한 기쁨을 간직하는 신학,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신학과 윤리를 만들어냈다.

그의 ‘희망의 신학’은 철저한 체험에서 나왔다. 1926년 4월 8일 독일 함부르크의 교육자 가정에서 태어난 몰트만은 시와 독일철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의 관심은 레싱, 괴테, 니체 같은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18세 때인 1944년 독일군에 징병됐다. 그는 입대하는 날에도 ‘파우스트’와 ‘차라투스트라’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하지만 6개월 뒤 벨기에의 한 숲에서 영국군에게 붙잡혀 3년간 벨기에와 영국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의 삶은 변했다.

같이 입대했던 독일군 동료들은 절망 속에 병들어 죽어갔지만 그는 우연히 미군 군목에게서 받은 신약과 시편 성경을 읽으며 희망을 찾았다.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방한해 당시를 회고하면서 “나는 새로운 생명에 눈뜨게 됐다. 그때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셨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리고 죽음을 당하신 후 부활하셨다”고 말했다.

이러한 체험은 60년대 초까지 세계 신학의 주류를 형성하던 이른바 ‘사신(死神)신학’의 열풍을 잠재우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신학은 모든 초자연적이며 신 중심적인 세계관을 신화로 규정하는 등 초자연주의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초월적이며 전능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순전히 인간 예수만 집중했다. 바로 그 무렵 몰트만이 등장하면서 초월적 ‘희망의 신학’을 역설한 것이다. 사신신학에 대한 반전인 셈이다.

◇고통에 동참하는 신학=몰트만 신학의 특징은 책상 위의 신학 대신 행동하고 참여하는 신학이기도 하다. 그는 이론 중심의 신학을 거부하고 고통당하는 세계의 현실에 동참하는 신학을 추구했다. 그의 신학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희망 실현에 목표를 두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교회는 역사 안에서 자유와 평화, 정의를 추구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정치적인 힘으로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신학적 경향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이나 흑인신학, 한국의 민중신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서도 사회 구원과 개인 구원의 이분법을 배격하고 둘의 조화를 추구했다. 이는 그의 성령 이해에서도 엿보인다.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의 오심은 따로 떼어지지 않고 언제나 유기적으로 연합돼 있음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성령은 교회 공동체와 개개인에게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내려준 종말론적 은혜의 선물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무한한 현존으로 이해되며 우리는 그 안에서 생명이 깨어난다. 이러한 성령 인식은 오순절 성령운동 등 복음주의 진영과도 만나게 되는 단초가 됐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성령과 희망 목회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과 연결됐다. 두 사람의 인간적 친밀감도 급속하게 깊어갔다.

1995년 9월, 조 목사와 몰트만은 개인적 실존경험을 통한 성령 체험, 사회·역사적 변화 속 희망의 신학을 주제로 여의도 63빌딩에서 3시간 동안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과 질병의 상황, 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길어올린 ‘희망 목회’와 ‘희망의 신학’이 하나였음을 확인했다.

몰트만은 고령에도 왕성한 신학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희망의 윤리’를 펴낸 이후 공동체와 기쁨, 자유를 주제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 변화에도 관심이 많아 구약의 안식년 제도를 대안으로 꼽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지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돌직구’를 던졌다. 교회가 비판을 받고 있다면 정직하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어야 하며 대사회적으로는 기독교적 양심을 가지고 외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방한에서 몰트만 박사는 ‘한국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 박사와 만난다. 두 거장의 만남에 설레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몰트만 박사는 ‘희망의 하나님과 우리의 미래’란 제목의 특강을 한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 신학자가 던지는 참된 신적 희망과 미래는 어떤 것인가가 궁금하다(등록 및 문의 031-638-8657∼8·www.gspt.ac.kr).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