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당했던 끔찍한 경험 피해자들의 ‘아픔’ 생생하게 담아내다

입력 2013-08-19 01:59


박한울씨 ‘호루라기’ 촬영 … 피해자들 제작비 대고 직접 참여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가해자들에게만 폭행당하는 건 아니다. 사건을 축소하려는 학교와 교사로부터 또 다른 따돌림을 당한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고 있는 영화 ‘호루라기’는 피해 학생이 ‘문제아’로 찍혀 학교 밖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춰낸다.

영화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 11일. 세트로 이용되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경희대 캠퍼스 강의실 안은 촬영 열기로 뜨거웠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대학생 박한울(20)씨. “카메라 롤, 레디 큐.” 짧고 힘 있는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교복을 입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는 고작 카메라 한 대와 오디오 장비, 붐 마이크가 전부였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기엔 충분해 보였다. 빠듯한 촬영 일정에 매일매일 강행군이지만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시나리오는 박씨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 1개월여에 걸쳐 완성했다. 그는 키가 작고 왜소하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6년 넘게 학교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였다. 금품 갈취는 물론 심부름과 쉼 없는 폭행 속에 자살 시도까지 했다. 당시 구타 후유증으로 현재도 시력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시나리오에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유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자신에게 전학 갈 것을 강요했던 담임교사와의 일화를 떠올리며 “오히려 문제아로 낙인찍혀버린 학교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끔찍했던 경험은 영화에서 주인공 소연에게 투영돼 있다. 소연은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고립되는 인물로 그려졌다. 소연은 우연히 학교폭력 피해자가 자살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후 가해자들의 또 다른 ‘먹잇감’이 된다. 학교는 정서불안을 나타내는 소연을 전학 보내려 한다.

괴로워하던 소연은 학교전담경찰관(스쿨폴리스)으로부터 호루라기를 건네받으면서 용기를 얻는다. 호루라기는 용기를 가져다주는 하나의 매개체다. 박씨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 중 하나다. 박씨는 “주위를 집중시키고 환기시키는 호루라기처럼 이 영화가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참여한 배우는 20여명. 제작진까지 포함하면 모두 35명이다. 대부분이 돈 한푼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이다. 덕분에 학교폭력 피해자 등이 모아 준 500만원으로 제작이 가능했다. 이들 중에는 고가의 장비를 선뜻 빌려준 이도 있었다.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인 진진연(42)씨도 딸과 함께 영화를 돕고 있다.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직접 당했던 진씨는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의 아픔을 갖고 사는 딸(18)에게 참여를 권유했다고 한다. 딸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며 거부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영화로 담아내는 박씨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현재 영화는 촬영 막바지 단계로 제작진과 배우들은 기대감 속에 9월 말로 예정된 시사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