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카프병원 사태 이대로 둘 건가

입력 2013-08-18 18:05


알코올 중독 특화 치료기관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KARF·카프) 병원 사태의 끝이 안 보인다. 카프 재단 운영을 맡은 한국주류산업협회의 출연금 미납으로 촉발된 병원 폐쇄로 지난 6월 초 공식 휴업에 들어간 지 2개월을 넘기고 있지만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카프는 환자들이 모두 떠나 한때 100여 병상에 이르던 남녀 병실은 텅 비어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병원 직원과 의료진은 수개월째 임금을 못 받아 고통받고 있다.

최근 카프 병원과 연계돼 운영되는 4개 사회복귀시설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카프는 알코올 환자들이 병원 퇴원 후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전 교육, 훈련, 전인 치유를 위한 재활 거주시설인 감나무집(남)과 향나무집(여), 직업훈련 주거시설인 ‘중간집’ 그리고 주간 재활시설 ‘참사랑’ 등 종합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들 시설은 병원 자체 재정과 일부 국고 지원을 받아 운영되지만 병원 폐쇄로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공과금도 못 낼 처지에 몰렸다고 한다. 감나무·향나무집은 입소자들의 부식비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며 일부 교회와 독지가 도움으로 근근이 해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칫 국내 유일 공익적 성격의 알코올 중독 치료기관의 모든 프로그램이 올 스톱될 위기에 처했다. 병원과 시설을 떠난 알코올중독 환자 가운데는 다시 술독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 안타까움을 더한다.

카프 노조와 알코올중독 환자 및 가족들은 주류산업협회 앞에서 ‘미납한 출연금을 내고, 카프 운영에서 손을 떼라’며 60여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보건의료단체들과 함께 카프의 공공기관 전환을 촉구하며 관리감독 부처인 보건복지부 앞 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카프 병원 사태는 우리나라 알코올중독 치료의 현실과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카프 병원은 첫 출발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 카프 재단은 2000년 주류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려는 법안이 추진되자 주류업계가 술 문제에 책임을 다하겠다며 내놓은 대국민약속으로 2004년 설립됐다. 알코올 중독의 ‘원인 제공자’격인 주류업계가 ‘세금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내 놓은 꼼수였던 셈이다.

대형 주류업체가 주축이 된 주류산업협회는 해마다 50억원을 모아 카프재단에 주기로 했지만 2006년부터 출연금을 내지 않는 회사가 늘더니 2010년 말 모든 업체가 출연을 중단했다. 누적 미납금은 155억원에 달한다.

스스로 공익과 사회공헌을 약속했던 주류업체들이 이제 와서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병원 운영에 발을 빼는 건 ‘화장실 가기 전과 가고 난 후 마음이 다르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주류산업협회는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출연금 납부 등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국내 알코올 치료와 재활, 예방 인프라는 취약하다.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은 민간 의료기관 6곳에 불과하다. 공공기관은 아예 없다. 전국 알코올상담센터는 50곳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알코올 중독 연구와 예방, 치료, 재활 등 전 과정에 걸쳐 10년간 노하우를 쌓은 카프를 이대로 버리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주류업계의 하루 빠른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촉구한다.

감독관청으로 그동안 수수방관만 해 온 복지부는 주류산업협회의 결단과 해결책 제시를 위해 적극 조정에 나서야 한다. 차제에 카프를 공공기관으로 전환해 알코올 중독과 문제 해결의 전형으로 키우는 것도 검토해 볼 것을 권한다.

민태원 정책기획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