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배병우] 킹목사 연설 50주년… 워싱턴의 열기

입력 2013-08-18 18:31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몰에 위치한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은 요즘 공사 중이다. 입구의 거대한 킹 목사 석상은 3면이 3층 높이의 공사장 비계와 장막으로 포위돼 있다. 돌을 가는 기계 소음 등으로 차분히 킹 목사의 업적을 살펴보려는 관람객들은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다. 공사는 2년 전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쓴 칼럼에서 비롯됐다. 요지는 킹 목사 석상의 오른쪽 측면에 새겨진 ‘나는 정의와 평화, 공의를 위한 고적대장(drum major)이었다’는 인용문이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이 구절은 킹 목사 암살 몇 개월 전의 설교문을 인용한 것인데, 원문은 “여러분이 나를 고적대장이었다고 말하고 싶다면 정의와 평화, 공의를 위한 고적대장이었다고 말하시오”로 돼 있다. ‘만약(if)’으로 시작되는 전문이 빠지면서 킹 목사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오만한 이로 비쳐진다는 지적이다. 논란 끝에 국립공원관리청은 90만 달러를 들여 이 구절을 지우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오는 28일이 “내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하는 킹 목사의 역사적인 워싱턴 연설 50주년이라는 사실이다. 기념일까지 채 2주도 남지 않은 가운데 WP와 지역 방송들은 연일 공사 진척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그만큼 이 기념일 행사에 쏠리는 미국인들의 관심이 크다는 방증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킹 목사가 사자후를 토했던 링컨기념관 그 계단에서 흑인 등 소수인종의 인권을 주제로 연설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구체적인 연설 내용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유력 신문은 물론 방송들도 당시 ‘행진’에 참여했던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잇따라 소개하고 있다. 윌리엄 P 존스 위스콘신대 역사학과 교수는 킹 목사가 그날 주도한 워싱턴 행진이 1941년에도 시도된 적이 있다는 등의 새로운 사실을 기록한 ‘워싱턴 행진(The March on Washington)’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인종과 백인 간 소득과 부 등 경제적·구조적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문제는 제기하지 않고 인종차별과 인권 등 추상적인 용어로 연설 50주년의 의미를 조명하는 것은 본질을 회피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