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반쪽’ 위원회
입력 2013-08-18 17:33
전국 각 지역마다 내려오는 설화들 중에는 ‘반쪽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대개 삼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반쪽이가 신체의 장애와 형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힘과 지략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설화에 따라 과거에 급제해 출세한다거나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해내는 설화와 달리 하나의 문제를 놓고 판단해야 하는 모임에서 반쪽이는 큰 의미가 없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찬성이든 반대든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견주어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3일 당시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재검증 방침을 발표했다. 임 전 실장은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를 구성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었다.
200여일이 지났지만 위원회는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와 야당·환경단체는 위원 구성 문제를 놓고 계속 대립했고, 결국 정부는 지난 16일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의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중립 입장의 전문가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반쪽’ 위원회가 되고 만 셈이다.
4대강 사업이 지난 5년여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요인이었던 만큼 조사·평가위원회 구성부터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반쪽’ 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데에는 정부의 조정 능력 부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야당·환경단체의 유연한 태도도 아쉽다. 스스로 비판했던 것처럼 ‘전 정부의 실패를 정당하게 평가할 의사와 능력이 없는’ 현 정부에게 조사·평가위원회 구성을 전적으로 맡긴 것은 진실을 알리기 위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핑계로 ‘반쪽’ 평가를 해선 안 된다. ‘반쪽’ 위원회의 평가 결과 발표와 이어질 정치적 공방은 그동안 봐왔던 모습의 다시보기에 다름없을 것이란 게 너무 뻔하지 않은가.
‘반쪽이 설화’ 해피엔딩의 최고조는 반쪽이가 온전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그동안 반쪽이를 핍박하고 오해했던 이들의 갈등이 해소되고 반쪽이는 행복을 찾는다.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가 의도했던 대로 구성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반쪽’ 위원회의 모습만은 탈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