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예배의 우선순위

입력 2013-08-18 17:01


마태복음 22장 34∼40절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곧 예배가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은 예배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인류 최초의 비극적인 사건은 예배의 실패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아벨은 참된 예배를 드리지만 가인은 참된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아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가인이 분노하게 되고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승리자는 삶의 승리자가 되지만 예배의 실패자는 곧 삶의 실패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요 4:23).

최근에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사설 해병캠프에 참가했다가 그만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파도에 휩쓸려 다섯 명이 익사를 당한 큰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장례를 치르는 그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해도 아린 가슴이 풀리지 않는 그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내 아들 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위로도 필요없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만 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중한 아들을 애타게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이유는 참된 예배자가 정말 귀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잘못 드리면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가는 헛된 예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사 1:11).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예배입니까. 그저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예배는 아닙니까.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예배는 아닙니까. 이벤트적인 예배는 아닙니까. 행사를 위한 들러리 예배는 아닙니까. 본질이 사라진 형식적인 예배는 아닙니까. 우리의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의 감동 감화가 있는 본질이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고 답보상태에 있을까요. 그 이유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는 회개와 고백과 결단과 헌신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표현은 예배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예배하게 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은 예배의 실패자입니다. 그래서 그 인생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예배의 승리자입니다. 요셉은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도, 감옥에 들어가도 예배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승리자가 됐습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축복입니다. 예배자의 삶은 날마다 주의 얼굴의 광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시 80:19).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예배 우선순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최창규 한강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