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세계화의 역설
입력 2013-08-16 19:07
류키 오브 더 이어(RYU-kie of the Year), 에이스 사냥꾼, 코리안 몬스터(괴물), 베이브 류스…. 요즘 승승장구하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류현진 투수의 별명 리스트가 길어지고 있다. 류 선수와 함께 연승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다저스는 국내 MLB 열기와 더불어 이제 ‘국민 야구단’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이역만리에서 펼쳐지는 류 선수나 박지성 선수의 활약을 거의 공짜로 안방에서 즐길 수 있게 된 데는 세계화의 혜택과 모순이 동시에 숨어 있다. 한국 국민들은 월 1만원 안팎의 케이블TV에 가입하기만 하면 해외 프로스포츠 생중계를 다른 무수한 채널과 함께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MLB나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가 열리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서민들이 비싼 입장료와 치솟는 중계료 탓에 경기장을 찾기는커녕 집에서 TV를 시청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빅 매치가 열릴 때 맥줏집마다 중계방송을 보기 위한 손님들이 가득 찬다.
프리미어리그의 최저 입장료는 5만원 안팎이다. 이를 중계하는 비스카이비 스포츠채널 시청료는 월 7만5000원가량이라고 한다. MLB 입장료도 웬만한 자리라면 10만원을 호가한다. TV시청료는 주마다 다르지만 MLB의 연간 중계권료 규모는 3조원 이상으로 프리미어리그의 약 3조7000억원과 비슷하다.
한국 MBC는 지난해 초 MLB 사무국과 협상해 400만 달러(약 45억원)에 2012∼2014년 3년간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다. 중계권료가 이렇게 싼 것은 한국 야구팬이 바다 건너 야구장에 들어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야구팬은 집에서 쉽고 싸게 TV를 볼 수 있다면 야구장으로 가는 발길을 끊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세계화는 운동선수와 예술가들의 몸값을 높여 놨다. TV,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과거 경기장이나 극장을 찾는 계층에게만 관람이 허용됐던 기예를 세계의 더 많은 곳에서, 무수한 관객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세계화 옹호론자들은 이런 ‘훌륭한 신세계’를 찬양한다. 그러나 그 절반만 진실에 해당된다. 선수와 구단은 날이 갈수록 돈방석에 앉지만 서민 관객들은 소외된다. 세계화는 이렇듯 스포츠 세계에서도 양날의 칼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